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에 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24.05.06
- 최종 저작일
- 20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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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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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인 19세기 후반에는 고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게 되며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아내인 명성황후의 정치가 시작되었다. 이 레포트에선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각 위인의 특징에 대해서, 라이벌로 대두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먼저 흥선대원군은 고종의 친부로서 대원군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그의 아들인 고종이 즉위하자마자 정권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질적으로는 조대비의 수렴청정이 걷혀가며 고종이 친정을 하며 흥선대원군의 집권이 시작됐다. 공식 사료에는 경복궁 중건 시기에 ‘조대비가 흥선대원군에게 경복궁 중건을 명했고 그해에 국태공에 봉하였다.’고 되어 있다.
참고 자료
대한제국의 황제, 망국의 황제, 우리 역사넷, 고종편http://contents.history.go.kr/kc/view.do?levelId=kc_n400200&code=kc_age_40
국사편찬위원회, 흥선대원군, 통치 질서를 다시 세우다.,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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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시, 성씨와 인물: 명성황후 민씨, https://www.yeoju.go.kr/history/jsp/Theme/Save_View.jsp?BC_ID=b1021
개화기 명성황후 민비의 정치적 역할, 이배용, 『국사관논총』, 1995
근대의 궁중여성: 명성황후의 권력과 희생, 이민원, 『사학연구』77, 2005
한국사의 라이벌 7주차 강의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