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 막부의 개창
- 최초 등록일
- 2008.10.30
- 최종 저작일
-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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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목표
헤이안 시대말기에 고대 율령체제의 붕괴와 무사의 등장, 그리고 원정시대를 살펴봄으로써 일본 최초의 무사정권인 가마쿠라막부 개창의 과정을 알아보자.
목차
1. 고대 율령체제의 붕괴와 무사의 등장
2. 원정시대
3. 미나모토씨의 사건들
4. 헤이지 정권 VS 미나모토씨
5. 맺음말
본문내용
1. 고대 율령체제의 붕괴와 무사의 등장
고대 율령국가의 토지제도는 공지공민제라는 기본원칙에 따라 모든 백성에게 구분전이라는 토지를 나누어주고 사망하면 국가에 반납하는 반전수수제 반전수수제: 모든 백성에게 구분전이라는 토지를 나누어 주고 사망하면 국가에 반납하게하는 제도로 이 제도의 목적은 호족의 대토지 소유를 방지하고 농민의 최저생활 보장과 과세대상의 확보에 있다.
였다. 후에 공지공민제의 모순과 붕괴에 따라 정부는 삼세일신법(三世一身法,723년) 삼세일신법(三世一身法,723년) : 개간한 토지에 대해서는 3세대까지 소유할 수 있고, 구래의 관개시설을 이용한 토지에 대해서는 본인 1대에 한해서 보유할 수 있게 했다.
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이도 통하지 않아 간전영년사재법(墾田永年私財法) 간전영년사재법(墾田永年私財法) : 개간한 토지에 대해서는 영구 소유가 가능하도록 했다.
을 시행하여 개간한 토지에 대해서는 영구 소유가 가능하도록 했다. 간전영년사재법이 시행이후 10세기 경 이후에는 중앙정부로부터 조세를 면제받는 장원이 증가하였다. 장원의 증가는 율령제의 붕괴를 가속화했다. 개간지는 국의 행정 책임자인 국사가 경작지를 조사해 국아의 토지대장에 등록해야 되는 것이었는데 농민이 무사와 결합해 국사의 부하가 장원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국사는 토지대장에 등록하는 일도,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일도 불가능해졌다. 이러한 와중에서 장원에 대한 권리를 유지하고 영내의 농민을 지배하기 위해 무장화가 이루어져 무사의 정치˙사회적 진출이 진행되었다.
2. 원정시대
9세기에서 10세기에 걸쳐 후지와라씨(藤原)는 천황가와 외척관계를 맺고 섭정 섭정 : 천황이 나이가 어려 정치를 행하기 어려울 때 천황을 대신해서 정무를 집행한다,
과 관백 관백 : 천황이 성인이 되었을 때 천황을 도와 정무를 행한다.
의 지위에 올라 천황을 대신하는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학습자 중심의 신개념 보충교재 일본고중세사, (주)예하 미디어
새로 쓴 일본사, 아사오 나오히로 외, 이계황 옮김, 창작과 비평
교양인을 위한 일본사, 구로시마 사토루 외, 이재석 옮김, 청어람 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