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의역사
- 최초 등록일
- 2014.08.30
- 최종 저작일
- 20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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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⑴ 매춘과 결혼제도
⑵ 조선시대의 매춘부
⑶ 유녀
⑸ 매춘의 금지
⑹ 매춘녀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일기장
⑺ 주막의 여주인, ‘주모’
⑻ 춘화
본문내용
⑴ 매춘과 결혼제도
조선시대에는 성적규제가 심해서 매춘행위가 일절 금지되었으나 엄연히 매춘이라는 것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매춘과 유사한 기능을 할 수 있는 공식적이고도 제도화된 장치들이 있어서 다른 어떤 시대보다도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남성들에게만 편중된 성적 자유로움으로 비롯된 안정된 결혼생활이었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었다.
여성들이 결혼을 아주 가치있다고 생각할수록 매춘의 발생률은 높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일처제나 일부다처제는 매춘 발생률을 억제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부다처제는 남성을 합법적인 성적 상대 없이 방치해두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시대의 매춘은 어떤 형 태이건 결혼제도를 보완해주는 장치로서 필요했고 한편으로 혼자사는 여성들의 사회・경제 적 자립의 수단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풍속을 문란시키는 음란한 행위라는 판단 때문에 매춘행위가 일절 금지되었 으나 이것은 유교적 명분일 뿐 실제로는 기녀나 첩과 같은 양성적인 매춘이 제도권 안으로 이미 흡수되어 있어 다른 나라에 비해 필요성이 덜했을 뿐이다.
<중 략>
우리가 흔히 ‘주모’라고 부르는 술집 여주인들은 머리를 땋아 한바퀴 돌려 틀어올리고 ‘팥 닢댕기’라 하여 빨간색의 좁고 짧은 댕기로 한껏 멋을 부렸으며 치마는 앞으로 돌려 가 슴에 닿을 듯이 치켜올려 중간에 허리띠를 매었는데 그 사이로 단속곳과 바지가 노출되어 있는 관능적인 모습과 매무새로 남성들을 유혹했다. 주모가 되는 여자들은 대체로 한물 간 기생이나 쫓겨난 세답방소주방무수리 등 결혼할 수 없는 아래치 궁녀들이었다. 주모들은 술만 파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주객들과 그 이상의 관계도 있게 마련이어서 그 뒤에는 항상 건달패 같은 기둥서방들이 있었다. 주모들이 나이가 들면 매력을 상실하게 되는데, 이럴 경 우에는 젊은 유녀들을 거느리고 본격적으로 술과 매춘을 겸하는 ‘은근짜’로 전락하는 경우 가 많았다. 정성희, “조선의 성풍속”, 가람기획, p.233~234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