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쌓여있어도 할 수 없는 시대가 있다. 그런 시대는 언제나 존재한다. 종이 위에다 농사를 짓는 작가가 글을 쓰지 못했던 1980년대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시대가 퍽 나아진 것은 없다. 글로써 열심히 농사를 지은 작가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변호인을 연기한 배우는 출연 섭외가 끊겼다. 겨우 무대를 결실로 내놓은 연극은 소리소문 없이 막을 내렸고, 우리들은 어디서 ‘말’을 찾아야 할 지 혼란스러웠다. 지금의 이야기다. 기나긴 투쟁의 역사에서 근현대의 과도기적 혼란은 역사책으로 배워야하는 것 인줄로만 알았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임은 알고 있었지만 하나쯤은 나아진 세상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지나온 흔적을 딛고 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면 되는 줄알았다. 그러나 나는 불과 지난 주말 역사에 큰 획을 남길 현장에 점처럼 서있었고, 21세기 광화문은 대낮처럼 뜨거웠다. 분노가 모여 뜨거웠고, 촛불의 열기가 뜨거웠고, 사람의 온기가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