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히틀러의 사상에 대한 보고서 입니다.
목차
I. 시작하는 글
Ⅱ. 히틀러의 머릿속, 그리고 그의 가슴속.
Ⅲ. 마치는 글
본문내용
히틀러는 청년기에 몇 년간 빈에서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책과 신문, 소책자를 읽었고, 역사․정치․민족 문제에 대해 공부했다. 그는 이런 것들을 접하면서 가톨릭교도, 유대인, 의회, 여성해방, 풍기문란, 알코올 등에 반대하였다. 그래서 술, 담배,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고 생활은 검소했다.
한편, 히틀러가 태어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절대주의 국가로서 당시 민족문제로 고심했다. 독일인 대 귀족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치하에서 권력을 독점했고 관료, 군인, 대지주, 자본가, 교원, 지식인의 대부분은 독일인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세력을 확장한 마자르인, 체코인, 폴란드인, 남슬라브인은 민족자치와 생활향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에 거주하고 있던 독일인들 사이에서 위기감이 고조되었고, 특히 20세기 초에는 독일인과 체코인 간에 격렬한 민족투쟁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회에서 히틀러는 열렬한 독일민족주의자, 반유대주의자가 되었다.
히틀러의 가장 근본적인 사상이라면 이른바 생물학주의적인 아리아 인종(독일 민족) 지상주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인류를 문화 창조자, 문화 지지자, 문화 파괴자의 세 종류로 나누었을 때, 문화 창조자는 아리아 인종뿐이며 그 밖의 非아리아 민족은 기껏해야 문화 지지자일 수는 있어도 문화 창조의 능력은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 파괴자로서 미워해야 할 민족은 바로 유대인이라고 하였다. 이런 아리아인의 민족적 우월감을 기초로 한 그의 반유대주의는 중소상공업자와 중소농민으로 구성된 독일인 중산계급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불만과 원한이 왜곡된 형태로 표출된 것이기도 했다.
독일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의 입장에서 히틀러는 마르크스주의의 국제주의와 계급투쟁이론에 반대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선전활동과 직장조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독신자 합숙소에서는 하층시민의 생활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는 독일민족지상주의자이며 反가톨릭 교회주의자인 쇠너러 운동에 동조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와 이 제국 내에 있는 독일인 거주지역의 독일합병을 지지했다.
참고 자료
히틀러, 이명성 역, 『나의 투쟁』, 홍신문화사, 1991년.
요아힘 페스트, 안인희 역, 『히틀러 평전 1』, 1999년.
하랄드슈테판, 최경은 옮김. 『아돌프 히틀러』, 한길사, 1997년.
홍사중, 『히틀러』,한길사, 199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