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상(고려)고려의 지배체제
- 최초 등록일
- 2012.08.09
- 최종 저작일
-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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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 길잡이 정리
목차
1. 중앙 정치제도와 관제 운영
2. 지방제도
3. 고려 지배체제의 역사성
본문내용
2. 지방제도
(1) 고려 통일 과정에서의 호족(지방세력) : 우리 역사의 어느 시기보다 지방세력이 강성하여 전국 각지에 다수의 정치 세력들이 반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후삼국 시기의 세 나라는 대표적인 3개의 세력을 의미할 뿐 호족 전체가 그들의 통치에 들어갔다고 보기 어려움. →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호족들이 정세의 변화에 따라 자주 이동.
고려는 호족에 대한 특별한 우대를 통해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통일을 이룩
(2) 통일 후 국가권력의 지방 침투 시도
① 태조 : 940년 군현명호의 개정을 통해 지방제도 정비 시도 → 한계
② 혜종&정종 : 왕권이 불안정하여 적극적 시도x
③ 광종 : 양전의 실시 → 본격적인 지방 지배. 그러나 상주하는 외관은 없었고 조세수취를 위한 임시 외관만 있었음
④ 성종 : 983년 12주목에 외관 파견. 중앙권력이 지방 호족 세력 제어 시작함을 보여줌. 995년 12주목 ⇒ 12군절도사 제도로 바뀌고 59곳에 도단련사 등의 외관 설치.
⑤ 이후 : 목종과 현종 때 약간의 조정이 있은 뒤 1018년 4도호부ㆍ8목ㆍ56지주군사ㆍ28진장ㆍ20현령이 설치하는 지방제도로 개편
(3) 외관 설치가 가능했던 이유 : 호족들의 정치적 영향력 감소, 거란과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군사적 성격의 외관 늘림. → 국왕에게는 중앙권력을 지방에 침투시킬 수 있는 좋은 명분, 향리들은 전쟁 과정에서 급격히 몰락함
(4) 고려 지방제도의 특징 ① 국경 지역인 양계에 일찍부터 병마사가 설치되고 그 아래 고을에 외관이 있었지만, 남방의 ‘5도’지역에는 외관이 없던 곳이 있는 곳 보다 훨씬 많음.(외관이 있는 고을인 주읍이 없는 고을인 속읍을 행정적으로 통솔 - 주ㆍ부ㆍ군ㆍ현 등의 명칭보다 외관의 유무가 고을의 지위를 뜻하는 읍격의 결정에 더 중요한 구실을 함.)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