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관계'에 중점이 맞춰졌던 전통적인 가족 서사를 해체한 <풀밭 위의 돼지>를 비롯해 10여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누구의... 죽은 아내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치매에 걸린 노인의 이야기 <풀밭 위의 돼지>, 친구의 아내와 욕망관계에 있는 사내가 등장하는 <검은 태양...
1. 개관
<풀밭위의 돼지>는 작가 김태용의 단편소설 10편을 수록한 책으로, 그가 2005년 등단한 이후 처음으로 출간된 작품집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들은 우리가 지금껏 읽어왔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보여주며, 낯설고 기괴한 세계로의 초대를 통해 소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그 중에서 ‘궤적’은 역시 그의 독특한 스타일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한 개인이 갖는 정체성과 이들이 모여 형성되는 관계의 의미, 나아가 삶을 바라보는 관조적 태도를 화두로 제시하고 있다.
2. ‘궤적’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궤적’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소설의 특징적 요소에 대해 한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책의 제목에 나와있는 풀밭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풀밭은 남편이 평생을 가꾸어온 자신만의 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서 부부는 항상 사랑하는 듯이 보이지만 아내의 역할은 언제나 수동적이다.
심지어 결혼 할 때부터 말이다. 이런 점에서 바라 볼 때 풀밭은 남편이 세운 왕국 같은 곳이다.
그래서 풀밭은 가족의 불화와 해체를 표현한 공간으로도 보인다.
책은 처음부터 죽음 관해 말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존재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 중 한가지 중요한 의미는 가족은 죽음을 함께 맞이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가족은 서로의 죽음을 보게 된다. 부모의 죽음을 보거나 자식의 죽음을 바라보니 말이다. 가족 안에는 죽음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첫 문장부터 이런 분위기는 느껴진다. 첫 문장에 묘사된 아내의 모습은 이렇다. 일조와 수분으로도 이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고목처럼 그녀의 발은 앙상하게 말라 있다.
나무가 일조와 수분으로도 어쩔 도리가 없다면 그 나무는 이미 죽어 가는 것이다.
풀밭 위의 돼지. 주인공은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그를 보면 머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써, 한 아내의 남편으로써 그는 정말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적응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아마도 아내는 남편이 날 사랑하니까 저러는 거겠지. 남편이 퉁명스럽게 얘기해도, 상처 주는 말을 해도, 애정일 거야 하고 끊임없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설득하고 또 설득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 덕분에 남편은 풀밭이라는 자신만의 성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 했을 것이고 말이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들이 어머니에게만 책을 바쳤던 것도 아마도 이 때문 이었을 것이다. 아들에 대한 태도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어머니에게 바친 책을 두고 그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아들의 책은 형편없을뿐더러 지루하기까지 하다.
풀밭 위의 돼지는 10편의 단편 소설 중 단편집의 제목이자 표제작이다. 책은 부부관계와 부자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예전부터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이 하나 있다. 나중에 늙으면 돈도, 집도 다 필요 없다는 말이다. 결국 남는 것은 내 옆에 있어주는 배우자 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배우자라는 말이다. 결국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끝까지 지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책 에는 이런 어른들의 말씀처럼 평생을 함께한 부부의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풀밭 위에 함께 누워있는 부부가 보인다. 언젠가부터 우리 중 하나가 먼저 풀밭에 누우면 덩달아 눕는 습관이 생겼다. 어느 날 문득 그녀가 풀밭에 쓰러지자 돼지에게 먹이를 주고 있던 내가 밥그릇을 집어 던지고 그녀에게 달려가 옆에 누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