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세상에는 당연한 것들이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항상 옳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미 대세로 굳어져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 혹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명제들에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올바른 태도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자세는 쉽게 성취되지 않는다. 이미 잘 알려진 예시이지만, 다음과 같은 모습은 우리의 지적관념의 경직을 드러내준다.
서커스단의 코끼리는 실제로 말뚝을 쓰러뜨릴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도망가지 않는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말뚝에 매여 자랐기 때문에 자란 다음에도 도망칠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심리학자인 마틴 샐리그먼은 이를 학습된 무력감이라고 소개했다.
이러한 모습은 한일관계를 정립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그것이 해방인지 분리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는 일본의 흔적을 지워내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