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근대 계몽주의와 함께 태동한 역사비평은 성경 해석의 토대와 지평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다. 역사비평은 성경의 많은 이야기를 고대 신화의 범주로 격하시키거나, 비역사적 사실로 치부하거나, 심지어 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해석을 공공연히 일삼았다. 이에 맞서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역사비평의 포화를 피해 “근본주의”라는 성채로 피신한 채 문자주의의 참호 안에 몸을 웅크리며 신앙을 파수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비유하자면, 오늘날의 교회는 진지하지만 반지성적인 스킬라(Scylla)라는 근본주의와 엄밀하지만 무신론적인 카리브디스(Charybdis)라는 비평주의를 향하여 돌진하는 오디세우스의 배와 같다. 따라서 건전한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성경숭배적 반지성주의와 비평적 회의주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채 비평적이면서도 신앙고백적인 신학, 학문적이면서도 정통적인 신학, 영민하면서도 경건한 신학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서는 “신실한 비평”과 “비평적 신앙”이라는 두 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신실한 비평”은 엄격한 역사비평적 탐구를 기독교의 본질적인 교리에 대한 단호한 헌신과 결함시킴으로써 성경의 역사적, 신학적 차원에 대한 이해를 고취시킨다. 이 방법론은 한편으로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셨고 성경을 통해 인간의 방식으로 그들과 소통하셨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텍스트의 의미를 부적절하게 반영하는 모든 종류의 전이해를 재조정하는 열린 태도를 가지고서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 속성들, 그리고 기대들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비평적”이다. 신실한 비평 방법론은 텍스트에 묘사된 역사적 사건들과 텍스트가 그 사건에 부여하는 신학적 함의에 관한 대화에 역사적, 신학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포괄적인 해석학적 배경을 제공해줄 수 있다.
제목부터가 벌써 흥미를 자극한다. 역사비평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복음주의를 어떻게 규정할까에 대해서 궁금할 것 같다. 각 챕터에서 할 이야기가 많아 3부에 걸쳐서 리뷰를 해볼 예정이다.
본서에서 말하는 복음주의자들의 정의는 Cambridge Companion to Evangelical Theology에서 라슨(Timothy Larsen)이 제시한 개념을 따를 것이라고 밝힌다(44-5페이지 참조). 1장에서는 성서 비평을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입장을 잘 정리했고, 이 책의 입장을 말해준다. 일단 본서에서 정의하는 복음주의는 성서무오설을 따르지 않고, 역사비평을 활용한다. 그렇다고 성서무오설을 아예 배척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2장(창세기) 요약
2장에서는 오랜 시간 다양한 학문에서 접근했던 창세기 2-3장을 다룬다. 첫 부분은 아주 간략히창세기의 형성사를 요약해 준다. 그 후, 아담과 에덴 동산의 역사성을 부정해 온 현대 신학자들에게는 기독교 교리중 하나인 ‘원죄’의 교리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신화와 역사라는 두 주제는 결코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으며 고대 근동의 상황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본서는 제시한다. 또한 구약성서의 아담의 타락을 구약성서 이후 시대에 미친 원죄 교리의 영향을 정리한다. 유대교 문헌에서는 아담의 타락이 원죄로써 후손들에게 죄와 죄책을 전가한다는 교리보다는 후손들이 스스로 지은 죄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같은 개념으로 바울도 이해했다고 본서는 보고 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영향이 세상에 온 것은 맞겠지만, 아담과 같이 인간들도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의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로마서 5장을 해석한다. 이렇게 해석을 한다면 아담의 역사성이 부인되어도, 본서의 해석을 따른 원죄는 무너지지 않는다. 반대로 아담의 역사성을 부인하면, 그로부터 원죄와 원죄책이 생겨났다고 하는 주장은 무너지게 된다. 사실 바울에게는 ‘원죄’의 개념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 본서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