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인 ‘나’는 한국의 소설가다. 그는 이국에 있는 ‘와카’라는 부족을 방문하고, 그 곳에서 ‘아르판’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아르판 또한 소설가이고, 유일하게 와카 부족의 고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와카 부족은 ‘높이’를 숭배한다. 태국과 미얀마 접경 고산에 살기 때문일까. 무조건적으로 높은 것만이 그들만의 부와 명예의 상징이 된다.
아니, 높은 것을 추구하려는 본능은 인간 누구에게나 스며들어 있다. 태초부터 인간은 하늘을 날기 위해 노력했고,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른 인간을 위대한 사람이라며 기억한다.
소설 아르판은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표절에 대한 정당화-나아가 제국주의 정당화- 문제, 아르판을 향한 독자들의 반응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방인에 대한 한국인의 차별적 시선, 소설이란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의 문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의문…. 다루고 싶은 주제가 많아 생각이 길어졌지만,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아르판과 주인공의 관계를 ‘전통과 현대의 관계’로 이해하고자 한다.
우선 주인공 거듭 한국을 ‘문명사회’로 칭하며 와카의 삶과 대비시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와카는 텔레비전이며 신문은 물론이고, 근대의 대표적 상징 중 하나인 전기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말린 나물을 설탕이나 후추로 교환했다는 것으로 보아 화폐조차 없거나 적어도 상용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적 생활상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즉 와카는 근대적인 요소 없이 전통사회의 모습을 띠고 있는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