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구락부는 영어 ‘Gray’와 일본어 ‘クラブ(쿠라부)’의 합성어이다. 즉, 회색 모임이라는 의미이다. 처음에는 왜 하필 모임 이름을 회색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보라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예쁘다 여겨지는 색들이 존재하는데 확 와 닿지 않는 회색을 택한 점이 의아했다. 하지만 ‘그레이 구락부’가 그 자체로 그레이 구락부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가장 최적화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론
<그레이Grey 구락부 전말기>는 주인공 ‘현’과 ‘키티’, K, M, C, 이 다섯 사람이 만든 ‘그레이 구락부’라는 단체 속에서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문학과 역사, 예술, 철학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보람을 느끼는 생활을 하지만 현은 키티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커갈수록 죄책감을 느끼고 갈등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 소설에는 그레이 구락부를 상징하는 소재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것들을 왜 구락부를 상징하는 소재인지와 이 소재들이 현의 갈등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분석해보고, 현이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그레이 구락부 - ‘창’의 기사들의 기사단과 ‘부엉이’
현의 친구, 화가 K가 현에게 구락부의 회원이 될 것을 권유할 때 했던 말 중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들 스스로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 그 속에 틀어박힘으로써, 현실과의 쓸데없는 부대낌을 비키는 데에 그 결사의 뜻이 있다고 본다.’ (p.12) 그 속에 틀어박힌다는 것, 현실과의 쓸데없는 부대낌을 비킨다는 것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외부와 직접적으로 통하지 않고 바깥으로의 움직임을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만의 단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규모와 크기는 관계없다. 전방위로 널리 알려져 있어도 나쁘지 않다. 다만, 비밀이 보장되어 있는 모임이면 곱절로 기쁠 것이다. 누구나 비밀은 있는 법인데 이왕이면 비밀의 스케일이 지극히 사사로운 개인적인 것이 아닌 비밀 단체 소속원정도의 스케일이라면 한껏 멋있지 않을까. 폼이 절로 날 것이다. 비밀 모임의 회원이라면 사명감은 업보이다. 객관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 질이 나쁜 비밀 모임이나 상대적으로 질이 덜 나쁜 비밀 모임이나 어떤 식의 사명감은 존재할 것이다. 더군다나 구성원끼리 동질감이 있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면 비밀 조직으로써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게다가 예술이다. 멋들어지지 않은가. 예술적 감성을 지닌 청년들이 똘똘 뭉쳐 비밀 조직을 만들었다. 자칭 예술인들의 집합소가 “그레이 구락부”라는 명칭으로 탄생을 했다. 쉿!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