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세상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담아두는 '13호 캐비닛'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로, 탄탄한 필력과 구성진 입심으로 싱싱하고 리얼한 이야기를... 작품의 화자는 178일 동안 캔맥주를 마셔대고 하릴없이 캐비닛 속 파일들을 정리하는 삼십대 직장인이다. 그의 낡은 캐비닛 안에는 온갖 기이하고 특이한...
국어 수업 중 김언수 지음의 캐비닛을 읽은 적이 있다. 지문으로 실려 있던 부분은 한 번에 몇 개월을 잠자는 토포러에 대한 것으로, 그야말로 실존하지 않지만 한 명쯤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성 싶은 그럴듯한 내용이었다. 그 소소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나는 캐비닛을 열었고, 그 중 블러퍼를 읽으며 작가의 발상에 놀라움을 느꼈다. 블러퍼는 간단히 말하면 실제와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 사람들로, 그들은 자신들이 무서워하는 온갖 것들을 현실에서 만난다. 그들의 침대 밑에는 악어가 살고 있고, 귀 안에는 거미가 들끓는 등 참 신기한 사람들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의 환상이 경계를 넘어와 그들의 몸에 상처를 남긴다는 것이다. 블러퍼들은 침대 밑 악어에게 물려 죽기도 하고, 30센티미터 높이에서 뛰어 온몸이 바스라지기도 한다. 아마 블러퍼가 환상을 보는 내용까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해 읽다가 악어에 물려 죽는 장면을 읽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는 독자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적잖이 당황했다.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고 그 은행나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매우 긴 잠을 자는 사람, 시간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사람, 입 안에서 도마뱀을 키우는 사람……. 이외에도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독특하고, 조금은 소름끼치는 심토머와 토포러들을 마주하며, ‘분명 판타지 소설은 아닌 것 같은데… 이 책을 쓴 작가가 정신이 조금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라고 의심하며 책을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읽을수록 반신반의하며 책의 매력에 빠져버린 나는 바보 같게도 정말 모두 어딘가에 실제로 있을 법한 일들이라고 생각해버렸다! 결국 책 끝 부분에 작가의 경고문을 읽고 허탈한 마음에 웃어버리고 말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