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들리고 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우리 청년들의 자아는 흔들리고 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불안한 청년들의 자아는 갈피를 못 잡고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사회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상황이 조성된 탓도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우리 안에 힘이 세고, 굳건하고, 건강한, 중심 잡힌 자아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자아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이다. 자아는 갑자기 한 순간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서서히 자라나서 흔들려 보기도 하고, 상처도 받으며 성장하는 것이 자아이다. 하지만 자아의 성장과 같은 경험보다는 주어진 길을 열심히 밟아오는 데 익숙했던 우리는 이 같은 훈련이 익숙하지 않다.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적이 많지 않다. 그 누구도 ‘상실을 딛고 일어나는 법’에 대한 매뉴얼을 가르쳐 준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기가 힘들고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기 마련이다.
“히말라야 만년 설산과 라자스탄 사막이 동시에 펼쳐지고, 첨단 IT 산업의 도심에 느릿느릿 암소가 걸어가고, 아쉬람의 고요한 명상 속에 최악의 카스트인 불가촉천민과 빈민들이 신음하는 나라.”
박노해 시인이 그의 사진전 <디레 디레>에서 표현한 인도이다. 한국은 인도처럼 극과 극의 모습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점점 그 간극이 넓어지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계층, 세대 간의 갈등이 그 예이다.
“위대한 민중들, 대지의 노동과 소박한 살림”에서 인도를 지탱하는 힘이 나왔듯이 우리나라 역시 구성원의 힘, 특히 청년들의 힘이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디레 디레’는 ‘천천히 천천히’란 뜻의 인도 말이며, 인도인들 삶에 아직 남아 있는 경전 속 가르침의 모습을 대표한다. 다른 나라, 다른 역사, 다른 환경 속 모습이라 할지라도 대지의 구성원들이 뿜어내는 그 메시지는 우리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교서적인 숫타니파타는 일종의 ‘말 모음집’이다. ‘숫타sutta'는 말의 묶음, '니파타nipata'는 모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타 종교와는 다른 불교의 가장 큰 특징은 신(GOD)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 세계적으로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 흰두교와 같은 대중적인 종교와 더불어 불교는 존재하고 있는데,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구도적 관점에서 신을 바라보고 있다. 불교의 다신교적 특성을 제외하고도, 불교는 ’나(I)‘라는 존재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숫타니파타는 이를 아주 쉽게 설파하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붓다(Buddha) 즉, 부처는 깨달은 자라는 일반명사로 하나의 존재만 있는 유일신이 아니다. 이것은 흰두교의 다신교적 특성을 보여주지만, 흰두교와 다른 점은 ‘나’라는 존재가 신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련을 쌓고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구도자’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지점에서 바로 불교라는 독특한 종교의 특징이 설명된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부처가 된다는 것이 ‘신'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