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봄」
저기 저 담벽, 저기 저 라일락, 저기 저 별, 그리고 저기 저 우리집 개의 똥 하나, 그래 모두 이리 와 내 언어 속에 서라, 담벽은 내 언어의 담벽이 되고, 라일락은 내 언어의 꽃이 되고, 별은 반짝이고,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 내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이다.
봄은 자유다. 자 봐라, 꽃피고 싶은 놈 꽃피고, 잎 달고 싶은 놈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봄」 전문(全文) -
봄은 찬란한 시간이다. 겨울동안 움츠렸던 꽃들과 동면(冬眠)에 들어갔던 동물 들이 깨어나는 시간이다. 모든 생명이 태동하고, 움직이는 시간이 봄이다. 그건 인간에게도 해당된다. 시인 오규원에게 봄은 “자유”다.
하지만 시인에게 봄은 단순히 움츠려 있던 생명들이 일어나는 시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담벽”, “라일락”, 그리고 하늘의 “별”, 심지어 “개의 똥”까지 자유롭게 움직인다. 인간이 만든 담벽도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라일락과 별이 그의 시선에서 재탄생된다. 봄은 시인에게도 전지전능한 모습을 지니게 간다. “내 언어의 뜰”에서 구르는 모든 생물들이 시로써 재탄생한다. 가장 쓸모없고 하찮은 “똥”마저 자유롭게 움직이는 시간이 봄이다. 봄은 “마음대로” 뛰는 생명력을 가진 시간이다.
시인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봄은 자유다.” 봄은 다른 어떤 순간보다 자유롭다. 그렇기에 이 생명력 넘치는 시간을 다른 단어로 대체된다고 해도 감출 수 없다. 봄을 “자유”가 아닌 “지옥”이라고 불러도 시인에게 필 꽃이 안 필 리 없고, 반짝일 것이 안 반짝이지 않는다. 지옥은 죽음이 포함되어 있다. 지옥은 죽어야만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