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왕의 수렴청정(정희왕후, 문정왕후)
- 최초 등록일
- 2009.01.08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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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여왕인 정희왕후와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다루었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수렴청정(垂簾聽政)이 필요하게 된 배경
2. 수렴청정의 시작
1) 정희왕후 윤씨
(1) 수렴청정의 계기
(2) 정희왕후의 행적
(3) 수렴청정에서의 퇴진
2) 문정왕후 윤씨
(1) 수렴청정의 계기
(2) 문정왕후의 행적
(3) 수렴청정에서의 퇴진
Ⅲ. 맺는 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Ⅱ. 본론
1. 수렴청정(垂簾聽政)이 필요하게 된 배경
조선시대 왕비는 왕이 세상을 떠난 후에 중전을 비워 줘야 했다. 후계 왕이 등극함에 따라 새 왕비가 중전의 주인이 되었고, 홀로 된 왕비는 대비가 되어 중전 뒤편의 한적한 곳으로 옮겨갔다. 왕비는 한창 젊은 때에 홀로 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지어 20대의 꽃 같은 나이에 대비가 된 왕비들도 있었다.
수양대군의 큰 며느리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혜왕후 한씨가 남편을 여의었을 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21세였다. 또 선조의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는 25세에 대비가 되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수렴청정으로 당대를 뒤흔들었던 대비들, 예컨대 정희왕후, 문정왕후, 순원왕후는 40대에 중전에서 물러나야 했다.
조선시대 왕비들이 이처럼 젊은 나이에 대비가 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첫째는 단명한 왕이 많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왕으로 군림하였던 27명 중에서 연산군과 광해군을 제외한 25명의 평균 수명은 46세 정도였다. 그 중에는 17세의 단종, 20세의 예종, 23세의 헌종처럼 30세 이전에 세상을 버린 왕도 있었다. 또 30대에 세상을 떠난 왕도 8명이나 되었고, 25명의 왕 중에서 환갑을 넘긴 왕은 겨우 5명에 불과했다. 30대 또는 40대의 왕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왕비는 그보다 젊거나 아니면 비슷한 나이로 대비가 되었다. 왕이 장수했을 때는 오히려 대비가 되는 왕비의 나이가 훨씬 더 젊었다. 이는 왕이 오래 살면서 두 번, 세 번씩 왕비를 맞이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였다.
남편을 여읜 여성은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유교 법도에 따라 왕비는 대비가 되는 순간부터 조용히 여생을 보내야 했다. 중전에서 물러나 대비전으로 거처를 옮긴 대비는 아침저녁으로 왕과 왕비의 문안 인사를 받았고, 왕실의 경조사나 명절 때에는 왕실의 어른으로 참석하였다. 그리고 왕대비, 대왕대비 등의 웃어른들이 있을 때는 성심을 다해 모시는 것이 대비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도 대비는 왕의 어머니로서 또 왕실의 어른으로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미성년자인 왕이 즉위하는 상황이 많았던 조선의 현실 때문에 많은 대비들이 여생을 조용히 보내지 못했다. 어린 왕을 대신해 대비가 왕실의 어른으로서 수렴청정을 실시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대비의 수렴청정은 성종 때부터 시작되었다.
참고 자료
『왕비의 내조와 질투』이현조 지음, 명문당, 1988
『(새롭게 꾸민) 왕비열전』, 임중웅, 선영사, 2003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 문화』 신명호, 돌베개, 2002
「문정왕후의 정치 참여와 정국운영」김우기, 역사교육논집 23/24집
「조선시대 수렴청정의 정비 과정」임혜련 조선시대사학보 27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