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단고기 단군세기1목차
1 檀君 壬儉 단군 왕검2 夫婁 부루
3 嘉勒 가륵
4 烏斯 오사/오사구
5 丘乙 구을
6 達文 달문
7 翰栗 한율
8 于西翰 우서한/오사함
9 阿述 아술
10 魯乙 노을
11 道奚 도해
12 阿漢 아한
13 屹達 흘달
14 古弗 고불
15 伐音 벌음/후흘달
16 尉那 위나
17 余乙 여을
18 冬奄 동엄
19 緱牟蘇 구모소/종년
20 固忽 고홀
21 蘇台 소태
22 索弗婁 색불루
23 阿勿 아물
24 延那 연나
본문내용
右賢王聞之 遣人 勸帝止之 帝綜不聽우현왕은 이를 듣고 사람을 보내 단제에게 권하여 이를 중지케 하였으나 단제는 종래 이를 듣지 않으셨다.
於是 右賢王率左右 及獵戶數千 遂卽位于夫餘新宮
이에 우현왕은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 사냥인구 수천을 이끌고 마침내 부여의 신궁에서 즉위하였다.
帝不得已傳玉冊國寶 廢徐于餘 爲庶人帝隱於阿斯達
단제도 어쩔수 없이 옥책 국보를 전하고 서우여를 폐하여 서인을 삼고, 아사달에 은퇴하여 마침내 붕어하셨다.
以終是歲 伯夷叔齊 亦以孤竹君之子 遜國而逃 居東海濱 力田自給
이해에 백이와 숙제도 역시 고죽군의 자손들로서 나라를 버리고 동해의 해변가에 와서 살며 밭갈기에 힘쓰며 자급자족하였다.
二十二世 檀君 索弗婁 在位四十八年
22세 단군 색불루 재위 48년
丙申元年 帝命修築鹿山 改官制
병신 원년(BC 1285紀元1049年) 단제 명하사 녹산을 보수 건축시키고 관제를 개정하였다.
秋九月 親幸藏唐京 立廟 祀高登王
가을 9월엔 친히 장당경으로 행차하시어 사당을 세우고 고등왕을 제사지냈다.
十一月親率九桓之師 屢戰破殷都 尋和 又得大戰破之
11월 몸소 9한의 군사를 이끌고 여러 차례 싸워 은나라 서울을 격파하고 곧 화친하였으나 또 다시 크게 싸워 이를 쳐부쉈다.
明年二月 追至河上而受捷賀 遷弁民于淮垈之地 使之畜農 國威大振
이듬해 2월 은나라를 추격하여 황하주변에 이르러서 승전의 축하를 받고 변한의 백성들을 회대의 땅으로 옮겨 그들로 하여금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게 하니, 나라의 위세가 떨쳐졌다.
辰丑六年 臣智陸右奏曰 阿斯達 千年帝業之地 大運已盡 寧古塔 王氣濃厚 以勝於白岳山 請築城 移之
신축 6년(1054) 신지인 육우는 상주하여 아사달이 천년 제업의 땅이라 해도 대운이 이미 다했으며 영고탑은 왕기가 농후하어 백악산을 이기는 듯 합니다. 청컨대 성을 쌓고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십시오 라고 했다.
帝不許曰 新都已宅 更何他往
단제께서는 허락하지 않고 말씀하시기를 `신도에 이미 집이 있는데 다시 어째서 옮기는가`라고 하셨다.
乙卯二十年 至是 藍國頗强 與孤竹君 逐諸賊 南遷至俺瀆忽居之 近於殷境
을묘 20년(1068) 이 때에 남국이 매우 강성하여 고죽군과 더불어 여러 적들을 쫒고 남으로 이동하여 엄독홀에 이르러 그곳에 머물렀으니 은나라 땅에 매우 가까웠다.
使黎巴達頒兵 進 據 岐與其遺民相結 立國 稱黎 與西戎 雜處於殷家諸侯之間 藍氏威勢甚盛 皇化遠及恒山以南之地
이에 여파달로 하여금 병사를 나눠 진격하여 빈기에 웅거하도록 하면서 그곳의 유민과 서로 단결하여 나라를 세워 여라 칭하고 서융과 함께 은나라 제후들 사이를 처하고 있도록 하였으니, 남씨의 위세가 매우 성하여 황제의 교화는 멀리 항산의 이남의 땅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辛未三十六年邊將申督 因兵作亂
신미 36년(1084) 변방의 장수 신독이 병력을 믿고 난을 일으켰다.
帝暫避于寧古塔 民多從之
이에 단제가 한동안 영고탑으로 피하니 많은 백성이 이에 따랐다.
癸未四十八年帝崩 太子阿忽立
계미 48년(1096) 단제 붕어하시니 태자 아흘이 즉위하였다.
二十三世 檀君 阿忽 在位七十六年
23세 단군 아흘 재위 76년
甲申元年(紀元1097年)命皇叔 固弗加 治樂浪忽 遣熊乫孫 與藍國君 觀南征之兵 置六邑於殷地
갑신 원년(BC 1237) 단제의 숙부인 고불가에게 명하여 낙랑홀을 통치하도록하고, 웅갈손을 보내 남국의 왕과 함께 남쪽을 정벌한 군대가 은나라 땅에 여섯읍을 설치하는 것을 살펴보게 하였다.
殷人相爭不決 乃進兵 攻破之
은나라 사람들이 서로 싸우면서 결판을 보지 못하니 마침내 병력을 진격시켜 공격하여 이를 쳐부수었다.
秋七月誅申督 還都 命釋囚浮
가을 7월 신독을 주살하고 수도로 돌아온 뒤 포로들을 석방하도록 하였다.
乙酉二年藍國君 今達 與靑邱君句麗君 會于周愷 合蒙古里之兵 所到破殷城柵 深入奧地定淮岱之地 分封 蒲古氏於淹 盈古氏於徐 邦古氏於淮 殷人望風 煌怯莫敢近之
을유 2년(1098) 남국의 임금 금달이 청구의 임금, 구려의 임금과 주개에서 회합하고 몽고리의 병력을 합쳐 가는 곳마다 은나라의 성책을 부수고 깊숙이 오지로 들어가 회대의 땅을 평정하더니 포고씨를 엄으로, 영고씨를 서 땅에 방고씨를 회땅에 각각 임명하니, 은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풍모를 우러러보며 당황하여 두려워하여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戊子五年召二韓及五加 議停寧古塔 移都事
무자 5년(1101) 2한 및 오가를 불러 영고탑으로 도읍을 옮길 것을 의논하는 것을 중지하도록 하였다.
己亥七十六年帝崩 太子延那立
기해 76년(1172)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연나가 즉위하였다.
二十四世 檀君 延那 在位十一年
24세 단군 연나 재위 11년
庚子元年命皇叔固弗加 爲攝政
경자 원년(BC 1161紀元1173年) 황숙 고불가를 섭정으로 삼다.
辛丑二年 諸汗奉詔 增設蘇塗 祭天 國家有大事異災則輒禱之 定民志于一
신축 2년(1174) 여러 한들은 조서를 받들고 소도를 증설하여 하늘에 제사지냈으며, 나라에 큰일이나 이변이 있으면 곧 여기에 기도하여 백성의 뜻을 하나로 모았다.
庚戌十一年(1183)帝崩太子率那立
경술 11년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솔나가 즉위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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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단고기 삼성기 전 상편 하편 8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