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식의 역사서술과 역사인식
- 최초 등록일
- 2008.11.28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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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학-박은식의 역사서술과 인식에 대한 리포트
목차
1. 머리말
2. 朴殷植
1) 生涯
2) 연보
3. 저술목차
1) 朴殷植의 著述目錄
2) 韓國通史 目次
3) 韓國獨立運動之血史 目次
4. 朴殷植의 歷史認識
1) 陽明學 受用으로 인한 歷史認識變化
2) 고대사에 대한 歷史認識
3) 英雄주의적 歷史認識
4) 國魂론적 歷史認識
5.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白巖 朴殷植 선생은 근대 한국의 위대한 민족사상가, 언론인, 교육자, 漢學문장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역임한 독립운동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근대사를 최초로 개척하고 체계화한 역사학자였다. 백암은 이미 구한말에 해박한 역사지식에 기초하여 국민계몽운동을 위한 수많은 역사논문과 평론을 신문잡지에 발표하였다. 그는 1911년 국외에 망명한 후에도 쉼 없이 역사서와 논문들을 집필하였다. 백암이 저술한 역사책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저작이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라고 말할 수 있다. 백암의 이 두 저작은 실로 한국근대사를 최초로 체계화한 한국 학계의 古典이 된 작품이다. 이에 우리는 민족사상가인 박은식의 생애와 그가 저술한 역사서와 논문 등을 통해 박은식의 역사인식과 당시대의 역사인식까지 엿보려 한다.
2. 朴殷植
참고문헌 한영우(韓永愚)/한국민족주의역사학(韓國民族主義歷史學)
이만열(李萬烈)/<박은식> <<한국사시민강과>> 30. 2002
1) 박은식의 생애
박은식(1859~1925)은 19세기 중엽 황해도 황해군 남면의 바닷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字는 聖七, 號는 처음에 謙谷이라 하였다가 뒤에 白岩이라 하였다. 1910년 국치 후에는 朴箕貞이라는 별명을 쓰기도 하고 太白狂奴 혹은 無耻生이라는 별호를 즐겨 썼다. 본관은 조선조 大姓의 하나인 密陽이나 그의 직계선대는 벼슬아치가 없었고 조부 박종록이 ‘力農治産’하여 부농으로 성장한 듯하다. 그러나 부친 박용치가 서당의 훈장을 지낸 것으로 보아 농업과 儒業을 겸업한 서북지방의 전형적 토착양반임을 알 수 있다. 부친이 과거출사를 하지 못한 것은 경색된 세도정국하에서의 서북인 차별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박은식은 부친의 서당에서 漢學(朱子學)을 공부한 그는 주자학자로 성장하였다. 그는 22세 되던 1880년에 먼저 경기도 광주의 斗陵에 살고 있던 신기영과 정관섭을 찾아가 茶山의 정치사상을 접하였으며 이어 서울에 머물면서 임오군란을 목도하고 시무책을 제출하려다가 실패하자(1882),
참고 자료
* 백암박은식전집편찬위원회,『백암박은식전집 총목차』,동방미디어(주), 2002년
* 한영우(韓永愚)/한국민족주의역사학(韓國民族主義歷史學)
* 이만열(李萬烈)/<박은식> <<한국사시민강과>> 30. 2002년
* 김용섭 한국의 역사인식 下 『우리나라 근대 역사학의 성립』, 창작과 비평사, 1985년
* 이경선 『한국학논집 전8집』「박은식의 역사․전기소설」, 한양대학교 출판원, 1985년
* 진용하 『省谷論業 제 7집』「박은식의 애국계몽사상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원, 197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