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작가 현진건 연구
- 최초 등록일
- 2008.11.26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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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작가 현진건에 대한 연구자료입니다.
간단히 정리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현진건의 삶
2) 현진건의 작품
3) 현진건의 문학과 문학사적 의의
4) 연보
본문내용
현진건은 <운수 좋은 날>과 같은 작품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실주의 작가이다. 아래에서는 한국 근대 소설사의 중요한 한 장을 차지하고 있는 현진건의 생애와 그의 작품, 그리고 그의 문학사적 의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1) 현진건의 삶
현진건(玄鎭健 1900~1943) 본관은 연주(延州), 호는 빙허(憑虛)이다. 그는 1900년 8월 9일 구한말에 득세한 개화파 집안인 대구우체국장을 역임했던 현경운(玄慶運)의 4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열 한살 때 생모를 여의고, 1915년 이순득(李順得)과 결혼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외국어학교에서 공부했는데, 그 이전에는 고향에서 한문 공부를 했다. 학교를 마친 뒤에는 상해로 건너가 호강대학(滬江大學)에 입학해 공부한 뒤, 1919년 귀국하여 한말 주일공사관 참서관(參書官)을 지낸 당숙 보운(普運)에게 입양되었다.
1920년 《개벽 開闢》에 <희생화 犧牲花>를 발표함으로써 문필활동을 시작하여<빈처 貧妻>(1921)로 문명을 얻었고, 1921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함으로써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홍사용(洪思容), 이상화(李相和), 나도향(羅稻香), 박종화(朴鍾和) 등과 함께 《백조 白潮》 창간동인으로 참여하여 1920년대 신문학운동에 본격적으로 가담하였다. 1922년에는 동명사(東明社)에 입사, 1925년 그 후신인 《시대일보》가 폐간되자 동아일보사로 옮겼다. 1932년 상해에서 활약하던 공산주의자인 셋째 형 정건(鼎健)의 체포와 죽음으로 깊은 충격을 받았는데, 그 자신도 1936년 동아일보사 사회부장 당시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인하여 구속되었다. 1937년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소설 창작에 전념하였으며, 빈궁 속에서도 친일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지내다가 1943년 장결핵으로 사망한다.
그는 전통적인 한국의 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격동기의 개화 지향적인 주변의 영향을 받고 성장했다. 정치, 사회적으로 어렵고 혼란된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가까운 사람들의 모습을 대하면서 자신의 삶을 정립했다. 그는 생활에 절도를 유지했고, 문단의 세기말적 분위기에 초연했다. 조혼한 아내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여성 관계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