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갑오경장설 (1)
2. 갑오경장설 (2)
3. 3․1 운동설
4. 18세기설과 그 수정들
5. 북한의 1866년설
6. 애국계몽기설
7. 결 론
본문내용
1. 갑오경장설 (1)
① ․ 안확 - 우리 문학사에서 갑오경장을 한 기점으로 설정한 것은 안확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조선문학사』에서 5단계로 시대구분을 하고 갑오경장에서 3․1운동 직후까지 ‘최근 문학’을 4단계로 구분하였다.
․ 김태준 - 대체로 안확의 시대구분과 유사하고, 안확으로부터 나아간 점이 있다면 갑 오경장 이후의 사회를 시민적 또는 부르주아적으로 규정한 명확성이다.
․ 임화 - 임화는 『개설 신문학사』에서 “역사 발전의 정체성으로 말미암아 선 행 봉건사회가 충분히 성숙되지 못했으므로 근대사회를 이룩할 수 없었으 며, 따라서 우리의 근대사회는 서구 근대사회의 이식과 모방을 통해서 출 발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는 까닭에 우리의 근대문학 역시 갑오경 장 이후 서구의 그것을 모방 이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하지 만 그는 조선 봉건사회를 미숙하고 불충분하지만 근대적 생산양식의 맹아 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② ․ 한국의 현대 - 갑오경장으로 한국이 근대화 되었다.
․ 한국의 문학 - 갑오경장을 기점으로 외국문학의 수용을 단순히 이식사적 측면에서 보고있다.
․ 현대 문학 - 1894년 갑오경장이후.
③ 김태준은 『증보 조선소설사』에서 영정조시대부터 1894년 이전까지의 소설을 개관한 6편의 제목을 ‘근대소설 일반’으로 붙였다. 이는 영정조시대 문학에서 싹튼 근대적 맹아가 갑오경장 이후 명확한 근대성으로 전환되었다고 파악된다. 임화는 갑오경장 이후 신문학 초기를 ‘과도기의 문학’으로 명명한다. 그는 이 시기를 신시대의 탄생이나 구시대의 사멸이 모두 가능한 때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소 다르긴 하지만, 김태준과 임화 둘 다 이행기를 설정하고 있다.
④ 이 견해는 갑오경장만 높이 평가하고 갑오농민전쟁과 의병전쟁은 과소평가함으로써 맑스주의도 근대주의의 한 연장이었음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서양의 문물의 도입만으로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이루려고 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문학의 내적 원동력을 배제했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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