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王安石(송나라 왕안석) - 勸學文 : 학문을 권하는 글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우리는 바야흐로 정보와 지식이 재산이 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책은 그 중에서도 고전적인 정보와 지식 습득의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송나라 왕안석은 勸學文이라 하여 학문을 권하는 한시를 남겼다. 책은 재능과 지혜를 더하여 주며, 책으로써 부유해지고 귀해지며 책으로써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돈이 있다면 책 꽂는 서재를 만들 것이며 그렇지 못하다면 책상이라도 갖추라고 했다. 모두 책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대목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정보산업 혁명시대에 대처 할 수 있는 가장 유일한 방법은 바로 첨단 정보와 지식 그리고 기술습득일 것이다. 처음에 이러한 역할은 책에 의한 정보 습득이였다. 볼테르에 의하면 “과거에 온갖 세계는 단 하나의 미개한 민족을 제외하고는 몇 권의 책에 의하여 지배되었다”라고 하였을 만큼 책의 지식을 중요시하였다. 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책은 중요하다고 일컬어져 왔던 것이다.
수업 시간에 배웠던 분서갱유 또한 책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분서갱유는 ‘불사를 분(焚), 글 서(書), 구덩이 갱(坑), 선비 유(儒)‘을 써서, 언론을 막아 독재정치를 하기 위하여 서적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땅에 묻어 죽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분서갱유를 시황제는 실시한 것일까? 시황제는 법치주의자로써 상앙과 한비자 등의 법가는 우민 정책과 법에 의한 획일적인 사회 통제를 주장하기 때문에 법치 노선을 비판할 수 있는 일체의 학문과 사상을 배격하였으며, 특히 선왕 도를 내세워 현실 정치를 비판하는 유가를 배척하였다. 진나라는 상앙 변법 이래 법치 노선을 견지하지만 천하 통일 이후에도 이 정책은 변하지 않았는데, 시황 34년(BC 213년) 유생이 진제국의 철저한 군현제 강행을 반대하고 봉건제 부활을 주장함으로써 불행한 사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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