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군부 독재와 ‘추악한 전쟁’의 청산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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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르헨티나의 과거사 청산을 위한 노력과 견해목차
<‘추악한 전쟁’(1976~1983)의 청산>1. 추악한 전쟁
2. 알폰신 대통령 시기
3.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 시기
4.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대통령 시기
<군부의 ‘추악한 전쟁’과 《눈까 마스》>
1. 군부 개입의 촉발 과정
2. 포고문에 따른 쿠데타 세력의 스스로의 정당화
3. 비요네 장군의 과도 정부
4. 알폰신의 문민정부
<가해자의 불복과 사법적 청산의 난항>
1. 본격적인 사법적 청산을 위한 장애물 제거 필수!
2. ‘카라핀타다’의 반란
3. ‘카라핀타다’의 반란 목표
4. ‘카라핀타다’의 반란에 대한 알폰신 정부의 문제점
5.메넴 정부의 대대적인 사면 단행
6.1990년대 초까지 아르헨티나의 민선 정부가 보여준 과거청산 방식
<정치적 타협에 대한 피해자의 반발>
1.<오월광장 어머니회>의 활동
2. <오월광장 어머니회> 내부의 갈등과 분열
<진상 규명 요구와 끝나지 않은 심판>
1.일반 대중의 관심과 진상 규명의지의 약화
2.두 악마론
3.새로운 사법적․정치적 변화
<추악한 전쟁의 청산이 주는 교훈>
1.아르헨티나 과거청산 과정의 특징
2. 아르헨티나의 과거 청산 마무리
3. 과거청산의 때늦은 추진과 정치적 접근에 관한 저자의 견해
본문내용
<‘추악한 전쟁’(1976~1983)의 청산>1. 추악한 전쟁
-1976년 3월 24일 호르헤 비델라를 필두로 한 아르헨티나의 군부세력은 자신들이 정한 ‘정의’의 기준에 따라 수많은 이들을 납치, 살해, 실종자로 만들고, 노동계급과 청년층에 조직적인 테러를 가함&불순분자로 지목된 활동가와 그 가족에 대한 납치, 고문, 구타, 암살, 폭탄테러, 영․유아 탈취라는 희대의 범죄 행위가 거리낌 없이 자행됨.
2. 알폰신 대통령 시기
-말비나스 전쟁에서 패배한 군부 통치자들이 물러나고 1983년 12월 라울 알폰신의 민선정부가 들어선 뒤 <실종자 진상조사 국가위원회>의 활동과 후속 인권 재판을 통해 공식적인 청산 대상이 된 “추악한 전쟁”⇨But, 청산 대상이 된 후, 사법적 청산 작업은 ‘일부 군 장교들의 반발&정부 방침의 일관성 부재&경제 사정의 악화’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난항에 빠짐⇨1986년과 1987년 ‘기소 종결법’과 ‘강제 명령에 따른 복종법’을 통해 처벌의 위협에서 벗어난 납치와 학살의 책임자들⇨기록적인 초인플레이션에 봉착하여 결국 알폰신 대통령은 1989년 퇴진.
3.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 시기
-1991년 1월 납치와 학살의 책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면을 통해 ‘추악한 전쟁’관련자를 전원 석방시킴⇨실종자 가족들의 모임인“오월광장 어머니회”는 타협으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청산 작업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중단 없는 투쟁을 선언하고, 3월 24일 쿠데타의 날을 ‘기억의 날’로 지키며 진실 규명 의지를 다지는 등,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인권․평화 단체로 부상함.
4.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대통령 시기
-2033년 5월 취임한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대통령은 과거 규명 작업을 우선 정책 과제로 삼았으며, 알폰신과 메넴 정부의 사면법을 폐기할 것을 결의!!⇨이리하여, ‘추악한 전쟁’에 대한 정치적․사법적 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천명함.
<군부의 ‘추악한 전쟁’과 《눈까 마스》>
1. 군부 개입의 촉발 과정
-‘후안 페론’의 체제는 최대 지지 세력인 노조가 분열에 휩싸이면서 근간이 무너지고 있었고, 1974년 7월 사망⇨부통령이었던 후안 페론의 아내 ‘이사벨 페론’이 국정의 책임을 떠맡았으나 상황은 더 악화됨(경제적 침체, 페론 정부에 대한 노동자들의 지지 크게 약화, 전례 없는 총파업 전개, 페론파의 심각한 분열로 급진분자들은 노조에서 이탈해 게릴라 조직을 만들기도 함)➡정부는 1975년 10월 포고령을 통해 국가 전복 행위를 엄단할 것을 선언하면서 군부의 개입을 촉발시킴.
2. 포고문에 따른 쿠데타 세력의 스스로의 정당화
- 【쿠데타 세력의 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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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르헨티나에서는 모든 헌법적 기구가 소진되었고 제도적 틀 내의 교정 가능성이 종식되었으며 정상적 과정을 통해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또 다시 분명해졌다. 그러므로 조국의 위대성을 인식하고 책임감과 민족정신에 충만한 군부가 신의 도움에 힘입어 완전한 국가 회복을 이룩하고 국민에게 혼란과 부담을 안겨주었던 상황을 종식시켜야 한다.”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이끈 “군사통치위원회”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의회를 해산하고, 기존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