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김부식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과 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의 분석을 통해 김부식이란 인물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입니다. 김부식이란 인물과 삼국사기의 특징이 잘 서술되어 있습니다.
목차
1. 김부식을 바라보는 시각
2. 김부식의 생애
3. 김부식의 활동 및 업적
4. 김부식에 대한 평가
5. 김부식의 평가를 위한 논점
6. 김부식에 대해 기록한 서적 및 전승기록
7. 『삼국사기』의 성격
8. 『삼국사기』에 나타난 김부식의 역사인식
결론 - 김부식에 대한 評
본문내용
1. 김부식을 바라보는 시각
김부식(金富軾)은 고려시대 문벌귀족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사서인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편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상반되어 있는데, 하나는 우리 고유의 전통사상을 말살하는데 앞장 선 사대주의자라는 평과 다른 하나는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유학자로, 우리 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이라는 평이다. 과연 김부식은 어떤 인물이고,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2. 김부식의 생애
김부식(金富軾)은 1075년(고려 문종 29)년에 태어나 1151년(의종 5)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입지(立之), 호는 뇌천(雷川)이라 한다. 사후에 내려진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무열왕 가계를 이은 김근(金覲)의 셋째아들로 김부식을 포함해 맏형인 김부필(金富弼)과 둘째 형인 김부일(金富佾), 그리고 아우인 김부의(金富儀)까지 형제 4명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명성을 떨쳤다.
22세가 되던 1096년(숙종 원년)에 과거에 급제, 안서대도호부(安西大都護府)의 사록참군사(司祿參軍事)를 시작으로 한림원에서 문한(文翰)의 직임을 맡아 이름을 떨쳤고 나이 42세이던 1116년(예종 11)에는 문한관으로 송나라에 사행을 다녀왔다. 그는 한림원에서 20여년을 재직하는 동안 자신의 학문을 닦고 문장을 연마하는데 매진했으며 당시까지 유행하던 남북조풍의 사륙변려문체(四六騈儷文體) 대신 당 송 고문체(古文體: 실용적인 한문체) 사용을 제창하던 김황원(金黃元), 이궤(李櫃) 등과 교유하면서 고문의 대가가 되었다.
그는 유교경전에 해박했고, 중국 역사도 종횡으로 꿰뚫고 있었다. 인종이 즉위하면서 권력이 왕의 외척인 이자겸에게 쏠렸을 때, 그에 아부하려는 몇몇 신하들이 인종에게 이자겸에 대한 특별대우를 청하자 김부식은 중국 역사에 보이는 여러 사례들과 『의례(儀禮)』의 조항을 들어가면서 부당함을 설파했다고 한다.
참고 자료
◇ 출전
한영우선생정년기념논총 간행위원회, 『한국사 인물열전 1』, 돌베개, 2003
사료
『삼국사기』
『고려사』
『고려사열전』
『파한집』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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