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옹정제(雍正帝). 처음 옹정제라는 이름을 들었을 땐 많이 낯설었다. 옹정제의 아버지인 강희제나 아들인 건륭제는 들어본 것 같았는데, 옹정제는 정말 처음 들었다. 궁금함에 책 표지를 넘기는데 독서하는 옹정제의 그림이 있었다.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섣 부른 행동이지만 처음 봤을 때 느낌은 왠지 냉철해 보이고 융통성 없어 보였다. 과연 옹정제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에 네 시간 만에 다 읽어 버렸다. 옹정제 그는 누구인가?
2. 본론
만약 근세 중국에서 대표적인 독재군주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청조의 옹정제라고 대답할 것이다. 옹정제는 건국 초부터 따지자면 5대째이고 청조가 베이징에 입성한 이후부터 헤아리면 3대째가 된다. 왕조가 흥할지 쇠할지는 대체로 3대째 정도에 결판나므로 옹정제는 청조에서 가장 중요한 갈림길에서 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옹정제의 즉위는 서기 1722년, 수천 년의 전통을 지닌 중국 독재정치의 최후의 완성자이자 실행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처음부분은 강희제가 다음 황제를 뽑는 과정에서의 보이지 않는 싸움으로 시작하여 의외로 사아거였던 옹정제가 황제가 되는 내용으로 시작했다. 강희제는 처음 이아거를 황태자로 삼고 다음 황제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는 이아거에 실망하고 태자를 폐위시켰다. 고심하던 강희제는 다른 황자들이 서로 황태자의 후임이 되기 위하여 다투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 끝까지 확실히 정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강희 61년 11월 즈음 황제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자 베이징에 있는 황자들은 아버지의 임종 시 머리맡에 불려왔다. 저마다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마른침을 삼키며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고 있을 때, 대신 롱고도가 황제 가까이 불려가 후계자 지명의 뜻을 전해 받았다. 후계자는 뜻밖에도 사아거였다. 이렇게 해서 강희제의 뒤를 잇게 된 사아거가 바로 옹정제이다.
그런데 옹정제가 즉위했을 때 즉위가 선제의 의지가 아니라 음모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또, 이러한 풍문에 대하여 옹정제의 즉위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여러 가지 소문과 유언비어가 난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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