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국시대
2. 사국시대의 특징
3. 가야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
4. 가야사를 새롭게 보기 시작한 여러 가설들
5. 가야의 건국 신화
1) 가락국 수로왕 신화
2) 대가야국 이진아시왕 신화
3) 두 신화의 관계
6. 가야 제국의 형성
1) 문헌으로 본 가야의 성립
2)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본 가야의 성립
3) 가야사의 시대구분
4) 가야의 강역
7. 맺음말
본문내용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삼국시대는 엄밀히 말해 562년부터 660년까지의 98년 동안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사국시대와 오국시대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부여와 가야는 나머지 고구려, 백제, 신라와 상호 유기적인 협조 또는 경쟁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들을 제외하고 당시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구성할 수 없다. 게다가 각국의 존손 기간을 비교해 볼 때, 고구려와 신라는 1,000년 가까이 존속했고, 백제는 700년 정도 존속했고, 부여와 가야도 600년 이상 존속했다.
다만 오국시대의 주요 구성원인 부여는 346년 멸망했다는 설과 494년 멸망했다는 설이 있는데, 부여는 346년에 선비족 모용황 군대의 침략을 받아 국왕 이하 5만여 명이 포로로 잡혀가며, 그 이후에도 부여는 몇 차례 사서에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연나라와 고구려의 위성국 지위에 머물다가 494년에 그 왕족이 고구려에 투항하였다. 그러므로 오국시대 대부분의 시기는 사국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야는 문헌 기록에 서기 42년부터 562년까지 존속했으며,《삼국유사》왕력에도 이미 고구려, 백제, 신라와 대등하게 가락국이 연표 형식으로 들어가 있다. 열국시대에 북방의 부여와 고구려는 이미 초기적인 고대 국가를 이루지만, 남한은 마한,54국, 진한 12국, 변한 12국의 삼한으로 분리되지만, 당시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원형이 나타나 있었기 때문에, 단독의 고구려사, 백제사, 신라사, 가여사를 다루는 관점에서 해당 역사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다루려면 그 시기를 포괄하지 않을 수 없다.
가야의 최대 판도를 살펴보면, 경상 우도와 전라 좌도를 모두 포함하며, 경상 좌도에서도 낙동강변에 가까운 창녕ㆍ밀양ㆍ부산 등지는 그 영역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5,000만 남한 인구 중에 3분의 1정도는 가야의 후예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한국 고대사 체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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