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관고분의 특징과 지석묘
- 최초 등록일
- 2008.04.22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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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3세기 후반 경 영산강 유역 ‘옹관고분’
후기 옹관고분 단계 : 옹관고분의 발전
지석묘-고인돌
고인돌을 축조하는 이유
무덤의 종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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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3세기 후반 경 영산강 유역 ‘옹관고분’이 대두
①봉분의 형태가 원형과 방대형으로 정형화
②옹관의 형식, 거치문의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저부에 돌기형태를 만들었던 것에서 음각형태로 새기거나 아예 생략하는 방향,
③옹관의 매장위치가 지하․반지하 매장에서 지상의 성토한 분구에 심는 방향
④타묘제와 공존하는 것에서 옹관고분만을 쓰는 것으로 변화
이러한 변화 요소를 고려 옹관고분을 전기와 후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차이는 이전 단계의 옹관묘적 요소가 일분 잔존해 있는가 소멸했는가의 여부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토광묘와 옹관묘와의 공존 여부를 변화의 주요 요소로 분류할 수 있다. 그 대표적 사례로 영암 시종면 내동리 7호분, 초분골 1․2호분, 만수리 4호분, 신연리 9호분,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 고분 등을 들 수 있다. 이 고분들의 공통점은 봉분의 형태가 대규모의 타원형 혹은 장방형의 길다란 형태, 봉분에 옹관과 토광의 매장주체시설이 병용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이 고분들에서는 옹관형식의 변화에 따라 고분의 선후관계를 추정할 수 있으며, 옹관묘와 토광묘의 관계는 토광묘에 대한 옹관묘의 우위성이 증대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기 옹광고분이 반드시 통광묘와 공존하는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토광묘는 없이 옹관만을 매장한 사례도 있다. 영암 시종면 일대를 위시로 영산강 유역과 서남해 일대에서 많은 수가 찾아지고 있어, 전기 옹관고분이 이 일대에서 주묘제로 대두되어 갔음을 시사해 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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