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적 미술에 대해
- 최초 등록일
- 2008.04.17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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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주술적인 미술 작품과 작가에대한 설명 사진들이 있습니다
대학 레포트로 제출한것입니다
목차
■서 론
■본 론
1. 주술미술의 상징족 형식
1) 선사미술에서의 주술
(1)벽화
(2)한국의 암각화
①울산 대곡리 암각화
②천전리 암각화
2) 전통미술에서의 주술
(1) 한국의 민화
①십장생
②십이지신
③화조도
④어해도
⑤호작도
⑥문자도
(2) 무속화(무신도)
2. 주술적 상징성을 형상화한 작가
1)박생광
■결 론
■참고 문헌
본문내용
서 론
예술은 인간에게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정신활동이다. 인간은 오늘날도 물론이고 원시시대에도 그 시대 상황에 따른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였다. 그것은 실생활이나 문화 양식 또는 종교의식 등과 관련을 맺어왔다. 나는 예술이 종교의식 중 특히 주술 즉 주술미술의 상징성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에 주목하고자 한다.
민간신앙인 무속은 우리나라 전통예술의 여러 부분에 영향을 끼치면서 이어 오고 있고 이 밑바탕에는 주술적 세계관이 깔려있다. 우리 민족은 만주 일대와 한반도에 생활 터전을 잡고 살았으며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면서 농경생활을 하게 되었다. 농경생활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를 알려 주었고 인간의 힘으로 거역 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을 느끼게 되어 자연에 대한 경애심과 함께 신앙심이 생기게 되었다.
하늘에 제사하고 인간의 힘으로 풀 수 없는 큰 문제에 당면했을 때 신의 힘을 빌려서 해결하려고 하였는데 그 중재의 역할을 맡은 것이 무당이었다, 무당은 신을 영접하기 위하여 굿판을 벌리고 인간과 신을 연결하려고 춤추고 노래하며 기원하였다. 이러한 무속행위는 국가가 형성되기 전인 부족사회 때는 제정일치 시대로 왕과 무당은 같은 사람이었으며 그 후 부족국가 시대에는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와 같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천의식에서 무당들은 사제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미술과 주술은 역사 이전 시대로 거슬러 가면 서로 동일한 선상에 있었다.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를 그린 화가는 무당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무당은 그 당시로서는 가장 중요했던 생존에 주술의 힘을 도입한 존재였다. 실제로 주술성은 특정의 물건이나 특정 행위가 지시하는 상징에 대한 강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러한 상징에 대한 믿음에서 드러나듯이, 선사시대에 주술은 주로 실용적인 목적에서 사용되었던 것 같다. 이는 그림에 창을 던진 흔적이나 동물로 변장한 인간의 그림, 또는 당시의 동물화가 자연을 충실하게 담아 그려졌던 점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선사시대의 이러한 주술과 미술의 개념을 한마디로 규정해 보면, 실생활과 직결된 주술을 바탕으로 기억표상에 의한 생명감을 표현하는 자연주의적 양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김융희, 「예술, 세계와의 주술적 소통」, 책세상, 2000.
김태곤, 「사라져 가는 무신도」도서출판한울, 1993.
김열규, 「한국의 신화, 민속,민담」,정음사, 1987.
임세권, 「한국 선사시대 암각화의 성격」,단국대 박사학위논문,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