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녀, 기녀시조와 황진이
- 최초 등록일
- 2008.04.16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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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녀, 기녀시조와 황진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체계적으로 잘 구성했습니다.
편집을 타이트하게 해서 7page입니다. 여유롭게 한다면 8~9page분량입니다.
목차
1. 기녀
(1) 기녀의 역할
① 예능적 역할
② 성적 역할
(2) 기녀의 성격
① 사회적 성격
② 여성사적 성격영향
③ 신분을 통한 자율적인 특징
2. 기녀 시조의 특징 및 의의
(1) 기녀시조의 특징
① 표현면에서의 특징
② 내용면에서의 특징
③ 기녀 시조의 이중적 성격
④ 당시 사대부 층의 시조와의 차이점
⑤ 기녀 시조의 근대 문학적 성격
⑥ 기녀시조와 고려 가요의 관계
(2) 기녀시조의 의의
3. 황진이 시조의 문학사적 의의
본문내용
1. 기녀
: 기녀란 춤, 노래 또는 풍류로 주연석(酒宴席)이나 유흥장에서 흥을 돋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관기(官妓), 민기(民妓), 약방기생, 상방기생 등 예기(藝妓)의 총칭으로, 조선시대 한량들은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라는 뜻에서 `해어화(解語花)`, 또는 `화류계여자(花柳界女子)`라고도 불렀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기녀란 원칙적으로 관기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기녀란 본래 가무의 기예를 배워 익혀 나라에서 필요할 때에 봉사하던 여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따라서 제도적으로 관청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신분상으로는 천인에 속했다. 혼용되어 쓰이는 기생(妓生)은 술좌석이나 잔치에서 노래나 춤, 또는 풍류로 흥을 돋구는 것을 업(業)으로 하는 여자를 일컫는 말이고, 기녀(妓女)는 옛날 재봉(裁縫), 가무(歌舞)등을 배우고 익히던 관비(官婢)의 총칭으로 구분하여 쓰기도 한다. 기생의 유래에 대한 정설은 없으나 고대 부족사회의 무녀(巫女)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제정일치 사회에서의 사제(司祭)였던 무녀가 제정이 분리되어 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지방 세력가와 결합하여 기생과 비슷한 신분을 형성하였다는 견해이다. 한편 《후한서(後漢書)》와 《수서(隋書)》에는 고구려의 유녀(遊女)에 대한 기록이 보이는데, 이들은 고대국가가 다른 부족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피정복 부족의 부녀자들로, 국가체제가 확립되면서 이른바 관기(官妓)와 같은 제도가 서서히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기생은 기본적으로 노비와 같은 신분이었고 이들이 일반 노비와 다른 뚜렷한 계층을 이룬 것은 중앙집권이 정착한 고려 때부터이다. 고려의 교방(敎坊)은 제도화된 기생을 배출하는 학교였으며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한편 조선 중기 이후에는 사대부의 유교문화와 융합하여 독특한 기생(기류) 문화를 낳기도 했는데 황진이(黃眞伊)․이매창(李梅窓) 등은 시조시인으로 문명을 날렸으며, 문학성이 뛰어난 고려가요도 기생층이 향유, 전승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어 이들이 한국의 문학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그러나 조선말기에 오면 기생이 일패(一牌)․이패․삼패 등으로 분화되는데, 일패는 관기의 총칭으로서 한국 전통가무의 보존․전승자로 뛰어난 예술인들이었으며 이패는 밀매음 (密賣淫), 삼패는 공창(公娼)의 기능을 했다. 한편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말기의 기생학교․ 기생조합 등이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으며 이를 통하여 사회적으로 비중있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참고 자료
- 참고 문헌 -
이능화, 『조선해어화사』, 이재곤 옮김, 동문선
- 참고 사이트 -
http://blog.naver.com/daechu31.do?Redirect=Log&logNo=60001453403
http://blrgus.hihome.com/ifilei/sijodufb.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