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연방의 탄생과 소멸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08.03.15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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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소비에트 연방, 소련의 성립배경부터 해체과정까지 전반적으로 정리한 리포트입니다. 자료에 따른 역사적 사실과 논문의 근거를 기반하였으며,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서 연대기적인 순서에 입각하기 보다는 중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서술하였습니다.
목차
1. 소연방체제의 성립
2. 소연방체제의 진화 및 해제과정
3. 러시아연방과 CIS와의 관계
본문내용
1. 소연방체제의 성립
19세기는 서유럽 국가들에 있어 진보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정치체제부터 사회, 경제 전반에서 대대적인 근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는 앞서 우리가 살펴본 점에서 그 역사적인 특수성으로 인해 유럽의 이러한 격동의 흐름에 편승할 수 없었다. 조국전쟁 이후, 프랑스를 비롯해서 서유럽 국가들의 이러한 진보를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던 당시 러시아 장교들과 더불어 러시아 일부 귀족 계층들과 소위, 지식계층들은 러시아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825년 12월 14일, 알렉산드르 1세의 뒤를 이어 나콜라스 1세가 새로운 황제로 즉위하는 날 3천명의 반란군을 모아 짜르를 향해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로 끝나게 되면서 러시아 차르체제에 의해 탄압받게 되었다. 알렉산드르 2세의 즉위 후, 그는 농노를 해방(1861년)시키고 지방자치기구를 신설하며 사법제도를 개혁하고 계급 차별이 없는 징병제도를 실시하는 등, 일련의 개혁을 시도했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짜르 체제의 약화 혹은 붕괴를 막기 위한 대책에 급급한 것들로서 피상적일 뿐, 농민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1881년 알렉산드르 2세가 한 테러리스트의 폭탄에 의해 암살되면서 이어서 재위한 알렉산드르 3세와 니콜라스 2세는 짜르 체제의 위협을 느끼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탄압·금지하고 대학자치권을 박탈하여 중앙정부의 통제에 두었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극심한 공황, 실업자의 증가, 임금의 저하, 지가 폭등 등으로 고조된 노동자의 반정부운동과 자유주의자의 입헌운동이 러·일 전쟁에서의 패배를 계기로 폭발되기 시작하였다. 1905년 1월 9일 일요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들 14만 명은 8시간 노동제와 최저임금제 등을 요구하며, 가풍 신부의 인솔 아래 왕궁을 향하여 평화적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군인들이 발포하여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부상하였다. 이 ‘피의 일요일’ 사건을 제1차 러시아혁명이라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