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생애와 업적
- 최초 등록일
- 2008.02.26
- 최종 저작일
-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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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정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하여 여러 사료적 자료들을 근거로 작성한 리포트 입니다. 각각의 유적과 유물들에 대하여 사진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목차
들어가며
고지도 제작의 역사적 배경
김정호의 생애와 업적
대동여지도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에 대한 오해와 진실
맺 음 말
본문내용
2. 고지도 제작의 역사적 배경
우리나라 고지도는 세계지도(천하도)·동아시아지도·전국도·도별도·군현도·관방도(關防圖) 등으로 구별할 수 있으나, 18세기 중엽 정상기(鄭尙驥) 지도가 출현하기 이전까지는 관찬지도(官撰地圖)가 주류를 이루었다. 정상기 지도의 출현 이후에도 그 성과를 흡수한 관찬지도가 영·정(英·正)시대에 여러 차례 제작되어, 18세기 말까지 지도제작의 주도권을 국가가 쥐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말∼19세기 초의 학인 홍석주는 `우리나라의 지지(地志)는 중국에 비하여 매우 소략하지만, 지도의 자세함은 중국을 능가한다`고 하여 우리나라 지도의 우수성을 자랑하고 있는데, 현존하는 수 천 점의 조선후기 고지도는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고지도가 뛰어난 것은 `도(圖)는 형(形)이요, 서(書)는 언(言)이다. 형이 있고 나서 언이 있다`고 한 정조의 말에서 보이듯, 지도의 중요성을 국가가 충분히 인식하고 지도 제작에 임하였다는 데 원인이 있다.
지도 제작에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것도 지도 제작에 대한 국가의 성의를 말해 준다. 산수의 형세를 풍수 지리적으로 읽어내는 상지관(相地官), 거리를 측량하는 산사(算士), 지지(地誌) 전문가인 관리, 그리고 지도를 직접 채색으로 그려내는 화원(畵員)의 협력이 지도 제작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사찬지도(私撰地圖)는 이러한 협력 체제를 갖출 수 없어서 관찬지도를 토대로 재편집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 경우 거리 실측은 개인이 할 수 없지만, 편집 기술은 관찬을 능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정상기 일가나 정후조 일가 그리고 김정호와 같은 우수한 지도제작자가 나오게 된 것이다.
참고 자료
1) 한국사 시민강좌 23집(1998), 양보경
2) 한국 문화역사지리 제 7호 (1995.8),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편집부
3) www.angangi.com
4) 최신 교학지도집, 이찬외 2명, 교학사, 1995
5) "한국인의 과학성 탐구 : 옛지도", `과학동아`, 동아출판사, 1995,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