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과 제도의 형성과 전시과의 종류
- 최초 등록일
- 2007.12.16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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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시과가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배경과 이로 인해 만들어졌던 전시과의 종류를
소개해 놓은 레포트입니다.
서론 본론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론에는 형성 배경 본론에는 전시과의 종류
결론에는 그 영향을 서술해 놓았습니다.
목차
Ⅰ.서론
ⅰ)전시과의 형성과정
Ⅱ.본론
ⅰ)전시과의 구분
①일반전시
㉠시정전시과(始定田柴科)
㉡개정전시과(改定田柴科)
㉢갱정전시과(更定田柴科)
②공음전시
③ 한인전(閑人田), 구분전(口分田)
④ 외역전(外役田)
⑤ 군인전(軍人田)
⑥ 궁원전(宮院田)
⑦ 사원전(寺院田)
⑧ 왕실어요지(王室御料地)
ⅱ)전시과의 성격
ⅲ)전시과의 붕괴
Ⅲ결론
본문내용
Ⅰ.서론
ⅰ)전시과의 형성과정
건국 직후의 왕건 정권의 분권적 세력을 정비하여 중앙집권적 지배권력을 확립하는데 있었다. 신라를 멸망으로 이끈 여러 모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토지지배관계의 문란으로써 왕건은 건국 직후 전제의 개혁에 착수하여 정비에 노력을 기울였다. 왕건이 제위에 올랐을 때 고려의 토지제도는 대체로 신라의 것을 계승한 것이었으며 내장, 식읍, 녹읍 등은 개국 직후의 토지 지배관계의 상태를 보여 준다.
내장은 왕실소속의 특수한 장원을 말하는 것이고 왕실 제정의 기반이었다. 이는 궁예 시대의 제도를 답습한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후일 점차 확대되어서 왕실재정에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식읍은 대체로 그 성격. 내용이 신라의 것을 계승한 것이고 공로가 탁월한 고관 등에게 사급한 것으로 보인다. 공로가 탁월한 인물들 중에는 지방의 호족들이 많이 포함되며 식읍에 대한 내용은 단순한 조의 수취뿐 아니라 역역등도 수위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녹읍 간접적으로 신라의 제도를 계승한 것이 분명하나 구체적 내용은 알 수 없다. 이것은 토지 그 자체의 지배를 의미한 것이 아니라, 생산노동력을 가진 인간과 그들이 거주하는 촌에 대한 일정한 지배를 의미한 듯하다. 건국 직후에 있어 관료들 전부에 대해 녹읍이 사급되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으며, 왕건의 호족연합정책의 실시로 왕친권세지가등의 특수층에 국한하여 사급한 것으로 추측된다.
식읍과 녹읍은 그 성격이 어떻게 다른지 분명치가 않으나 이것은 호족의 경제지배의 큰 기반이었다. 이 식읍과 녹읍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위에서 지적했듯이 공로가 탁월한 고관이나 호족 등 일부층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관료와 군사들에게도 어떠한 형태로든 토지의 급여가 있었을 듯싶고, 또 농민들도 자가경영의 경작지를 가지고 있었으리라 짐작되는데,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은 지금 잘 알 수가 없다.
이상에서 설명한 식읍과 녹읍 등은 전조인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토지지배관계의 유형을 계승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고려가 새 왕조로서 처음으로 시행한 토지정책은 태조 23년(940)에 설정한 역분전으로 나타났다.
참고 자료
1. 고려법제사연구/신호웅저
2.(완역)고려사/금종권역
3.고려토지제도사연구 : 전시과체제편/강진철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