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와 신채호 그리고 20년대 독립운동
- 최초 등록일
- 2007.11.22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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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과 신채호의 조선혁명론에서 주장하는 각각의 독립운동 방향 설정
그리고 독립운동의 모습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20년대 독립운동이 어떻게 나아가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리포트
목차
없음
본문내용
전 민족이 참여하여 일본으로 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외쳤던 3. 1운동이 일본의 무자비한 탄압과 세계열강의 무관심으로 인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서 민족주의자에겐 이전과 다른 새로운 방식의 독립운동이 필요하였고 3. 1운동이후 일본의 통치체제 변화 역시 민족주의자에게 이전과 다른 독립운동을 요구하였다.
3. 1 운동이후 민족주의자들은 그 결과에 대하여 두 가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나는 3. 1운동의 실패는 세계가 아직도 정의와 인도가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사회진화론에서 말하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시각은 한말 애국계몽운동을 주도하였던 지식인층에서 다수 받아들었으며 결국 독립은 민족의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였고 이는 독립운동의 방법으로서 실력양성을 주장하였다.
다른 하나는 평화 운동을 그 기치로 내세운 3. 1운동이 일본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인해 실패한 것으로 보았다. 이 시각은 일본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은 민족을 위한 필수 선행조건이라고 생각한 이들에게 일본의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독립운동을 생각하였고 평화적운동의 실패에 따른 무장운동의 필요성도 생각하였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로 인해 20년대 독립운동은 타협적운동과 비타협적 운동계열로 분화된다.
이광수는 1922 『개벽』이라는 잡지에 실은 「민족개조론」에서 민족의 독립은 외세의 정치적 힘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민족성 개조를 통한 민족의 실력이 충분히 되면 이뤄진다고 보았다. 당시 시대에 대해서 이광수는 민족성 개조가 이루어지지 않은 따라서 독립할 실력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시기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당시 벌여진 3. 1 운동과 민족의식의 성장을 근본적인 변화 없이 자연 또는 우연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그는 독립을 위해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창하였고 이는 곧 민족성의 개조를 의미하였다 그는 조선이 식민지가 된 이유를 우리 민족이 가진 민족성에서 찾았다.
참고 자료
신채호, 『조선혁명선언』, 1923
이춘원, 『민족개조론』, 개벽, 1922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개정판 단재신채호전집』 하, 형설출판사, 1987.
박찬승, 『한국근대정치사상사연구』, 역사비평사, 1992
이현희, 『독립운동사』, 청아출판사, 1994
김인덕 조규태, 『독립운동 사상 연구 -신채호를 중심으로-』, 보훈연수원, 1996
김영범, 『한국 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 창작과 비평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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