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출생.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확립자이다. 명문 중류귀족의 장남으로 외조부는 표트르 대제(大帝)를 섬긴 아비시니아 흑인 귀족이었다. 유년시대를 백부 바실리와 그 친지인 카람진 제코프스키 등 러시아 낭만주의 시인들의 영향하에서 자랐고, 1811∼1817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의 차르스코예셀로의 전문학교에 다녔다. 전문학교 재학 때부터 진보적인 낭만주의 문학 그룹 ‘알자마스’에 참가하여, 1814년 시 《친구인 시인에게》를 처음으로 발표하였다.
졸업 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외무성에 근무하였다. 혁명적 사상가 차다예프와의 교류, 데카브리스트의 한 그룹 ‘녹색 등잔’에의 참가 등으로, 그의 농노제 타도의 정치사상은 차차 확고한 것이 되었다. 시 《차다예프에게 K Chaadaevu》(1818) 《농촌 Derevnya》(1819) 등도 이러한 배경에서 쓰인 것들이다. 1820년 최초의 서사시 《루슬란과 류드밀라 Ruslan i Ljudmila》를 완성하였는데, 그것은 보수적인 의고전취미(擬古典趣味)에의 통타(痛打)가 되었다.
1824년 국외 망명에 실패하고 가령(家領) 미하일로프스코에 마을에 유폐되어 여기서 서사시 《집시 Tzygany》를 완성, 사실적인 시형소설(詩形小說) 《예프게니 오네긴 Evgenii Onegin》(1823∼1830)의 집필을 계속하였고, 비극 《보리스 고두노프 Boris Godunov》(1825), 풍자적 서사시 《누손 백작》(1825)을 탈고하였다.
1830년에는 보르지노 마을에서 소비극(小悲劇) 4편 《인색한 기사 Skupoi rytsari》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Motsart i Salieri》 《돌의 손님 Kamennyi gosti》 《질병 때의 주연(酒宴) Pir vovremya chumy》, 그리고 《벨킨 이야기 Povesti Belkina》 등을 탈고하였다. 그 해에 《예프게니 오네긴》도 완성하였으며, 이것은 러시아 문학사상 최초의 리얼리즘의 달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당시 러시아 사회의 특질을 남김 없이 그렸다.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는 산문소설 《스페이드의 여왕 Pikovaya dama》(1834) 《대위의 딸 Kapitanskaya dochka》(1836) 등을 써,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초석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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