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평안도 홍경래의 난
- 최초 등록일
- 2007.07.05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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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후기 홍경래가 주축이 되어 일어난 민란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Ⅰ. 19세기 전반기 사회정세와 평안도
1.세도정권 성립기의 중앙과 지방
2.평안도 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
Ⅱ. 농민전쟁의 전개과정
1.주도층의 형성과 농민전쟁의 준비
2. 농민군의 청천강 이북지역 장악
3.정주성에서의 장기항정
4.농민전쟁에 대한 중앙정부의 대책
Ⅲ. 평안도 농민전쟁의 참가층
Ⅳ. 평안도 농민전쟁의 역사적 성격과 의의
본문내용
Ⅰ. 19세기 전반기 사회정세와 평안도
1.세도정권 성립기의 중앙과 지방
1)세도정권의 성립과 그 성격
1800년 정조가 급서하자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개시하면서 일시에 권력은 노론 벽파의 손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정순왕후를 중심으로 한 벽파세력은 우선 정조의 신임으로 중앙정계에 등장할 수 있었던 남인세력을 천주교도라는 혐의를 씌워 전부 제거하였다. 그러나 규장각의 초계문신 출신으로 정조 생전에 정혼한 사이였던 김조순의 딸을 순조비로 책봉하는데 시파세력이 성공하자, 권력은 자연히 김조순을 중심으로 한 시파의 손으로 다시 넘어가게 되었다. 순조 초년 벽파세력의 도전을 이겨낸 김조순은 비변사와 훈련도감을 장악하고, 권력핵심을 굳혀나갔다. 특히 중앙권력은 서울에 사는 소수 성관의 거대한 유력가문, 즉 경화거족에 의해 독점되는 결과를 빚었다. 세도정권의 핵심가문은 안동김씨, 대구서씨, 풍양조씨, 반남박씨, 연안이씨, 남양홍씨 등이었다.
세도정권이 나타나는 배경은 18세기까지 활약했던 산림의 전반적인 쇠퇴와 핵심산림의 중앙정계로의 편입, 그리고 재야산림의 무력화와 국왕친위관료의 경화거족적 벌열로의 성장 등이었다. 이에 따라 중앙정치는 지방에 거주하던 산림이 아니라 국왕과 그 친위관료가 주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세도정치기에는 중앙과 지방과의 정치적 단절이 심화되었고, 순조 이후 왕권이 무력화되었을 때 중앙의 일부 경화거족적 외척문벌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세도정권은 18세기 이래 발전하고 있었던 상품경제의 이권을 독점함으로써 그 자체의 존립기반을 가질 수 있었다. 정조대에는 남인층의 대거 등용으로 중소지주와 중소상공업자를 대변하는 정치가 행해졌다.
참고 자료
강만길외 11명『중세사회의 해체(2)』한길사, 1995
한찬용『조선전사』과학·백과사전출판사,1997
정석종 『홍경래난의 성격』 한국사연구7, 1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