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홍경래 난에 대한 것을 작성했습니다.
여러 참고 문헌, 그리고 각주까지!!
정말 열심히 작성한 것인만큼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홍경래난의 배경
1. 사회적, 경제적 특성 2. 배경
1) 부세운영
2) 중앙권력의 구조적 수탈
Ⅲ. 홍경래난의 전개
1. 주도층의 형성과 봉기의 준비
2. 봉기
1) 청천강 이북지역 장악
2) 첫 패배
3) 정주성에서 장기항전
Ⅳ. 홍경래난의 의의
Ⅴ. 나가는 말
Ⅵ. 참고문헌
본문내용
Ⅲ. 홍경래난의 전개
1. 주도층의 형성과 봉기의 준비
홍경래의 난은 10년여의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하였다. 오랜 기간에 걸친 봉기 준비 과정에서 가장 중심적인 인물은 홍경래였다. 홍경래를 중심으로 우군칙, 이희저, 김창시 등의 지도부가 치밀하게 준비한 봉건정부 타도운동이었다.
홍경래와 우군칙이 처음 만나 친교를 맺은 것은 정조 24년이었으며 그 다음해인 봉기 10년 전에는 이미 병란을 함께 논의하였다. 봉기군으로 정주목사가 되었던 최이륜도 홍경래를 안 것이 7,8년 전이었다고 진술하였다. 이희저를 끌어들인 인물은 우군칙이었다. 이희저는 봉기 수년 전에 우군칙과 서로 어울리면서 준비 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홍경래는 우군칙, 이희저, 김창시 등으로 정지적 지도부를 결성한 후, 가산국 다복동을 그거지로 삼아 전쟁준비에 착수하였다. 가산군 다복동은 대정강 하류에 위치하여 청천강 이북지역으로 통하는 길목이며, 평양과 의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러면서도 산으로 둘러싸여 쉽사리 발견되지 않은 곳임과 동시에 대정강 가운데 있는 신도를 비밀은신처로 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홍경래 등 농민전쟁의 주도층은 처음부터 무장한 병력을 통한 봉건정부 전복을 꾀하고 있었으므로, 이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을 다양하게 벌여나갔다. 그들은 추도에서 정부 몰래 화폐를 찍었으며, 각 지역의 향임이나 부호들로부터 자금을 모집하였다. 농민군은 이와 같이 각 지역의 내응자들로부터 자금과 물품을 조달받는 한편, 이희저, 김창시, 우군칙 등이 자체 조달한 자금으로 각종 호피, 화포, 연철, 전죽 등의 군수물자를 반입하여 전쟁 주비를 착착 갖춰나갔다.
참고 자료
한국사10, 한길사, 1994
한국사36, 국사편찬위원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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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종, 〈「홍경래난」의 성격〉, 《한국사연구》, 1972
《봉건지배계급을 반대한 농민들의 투쟁(이조편)》, 과학원역사연구소,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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