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
- 최초 등록일
- 2007.02.04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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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사입문 시간에 광개토대왕비와, 일본서기, 송서, 칠지도 등을 비교해 가며 역사적 사실을 연구한 레포트입니다.
임나일본부에 대한 역사적 타당성과 현실에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자세를 언급하였으며, 여러 문헌을 참고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序論)
2. ‘임나일본부설’의 근거와 모순
1) 『일본서기(日本書紀)』
2)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
3) 『송서(宋書)』
4) 칠지도(七支刀)
3. ‘임나일본부설’에 관한 주장들
1)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견해
2) ‘임나일본부설’을 반박하는 견해
4. 결론 (結論)
본문내용
지금까지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학설 및 반론에 대해 알아보았다. 요컨대 일본에서의 ‘임나일본부설’에 관한 전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임나일본부’는 야마토 정권에 의해 경영된 것이며 그러한 사실은 우선적으로『일본서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일본서기』는 설화성이 강하고 조작된 기사가 많이 있지만 한반도 관계 기사에 관한 내용은 그 역사적 사실의 반영으로 인정할 수 있다.
둘째, 임나 경영에 대한 방증으로는『송서』를 중심으로 한 중국 측 기록을 들 수 있으며, 이러한 중국사서는『일본서기』에 결여된 5세기 한일관계사를 보충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이다. 또한 왜의 오왕은 곧 야마토 정권의 천황에 비정될 수 있다.
셋째, 4세기 초의 야마토 정권에 의한 국내통일과 무력의 축적이 임나 경영을 가능케 한 현실적 기반이 되었다.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에 진출한 이유는 선진 문물을 능동적으로 수용하기 위함이었고, 실제로 임나경영을 통해 선진 문물을 수용, 고대 국가로의 성장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일본 학자들의 ‘임나일본부’에 대한 견해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으나, 그것은 대개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3~5세기 한국과 중국 사료에 나타나는 ‘왜’를 일본열도를 통일한 야마토 정권으로 볼 수 있는가’하는 점이며, 둘째로는 ‘4~6세기에 일본열도의 정치세력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였다는 ‘임나일본부’의 근거가 확실한 것인가’하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아직 완전한 결말이 지어지지 않았다. 다만 현재 일본학계에서도 예전처럼 한반도 남부에 대한 식민지 경영과 같은 주장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임나일본부’의 존재 자체는 부정하고 있지 않다. 즉 ‘임나일본부’는 기내의 대화조정과는 무관한 구주의 지방호족에 의해 설치되었다고 보는 견해부터, 식민지 지배기관이 아니라 가야에 설치된 외교적인 대표기구라든가, 또는 가야의 족장 층과의 연합체 회의기구라든가 하는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반면, 한국학계에서는 대체로 ‘임나일본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데, 가야를 지배했다는 『일본서기』의 ‘왜’가 실제로는 백제라는 견해,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활동한 왜군을 백제의 용병으로 보는 견해, 임나를 가야가 아닌 대마도로 보는 견해 등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어느 나라에 있어서든지 고대 기록이라는 것은 엄격한 사료비판의 기초 위에 해석되어야 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일본은 한반도 지배의 정당화를 위해 사료를 조작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으며 그것의 해석조차도 자신들의 지배이론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갔음을 주지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