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안창호 독후감
- 최초 등록일
- 2006.12.29
- 최종 저작일
- 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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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산 안창호 독후감입니다.
목차
1) 도산 안창호의 생애
(1) 청소년기
(2) 성인기
(3) 노년기
2) 도산 안창호 선생의 주요업적
(1) 독립운동
(2)임시정부활동
(3) 교육운동
(4) 제외한인운동
3) 도산 안창호의 사상
(1) 힘의 철학
(2) 4대사상
(3) 교육사상
(4) 교육방법
4)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나 중요한 내용 요약
5) 느낀 점이나 자신의 주장
본문내용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속담 가운데에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것이 있다. 즉 사람은 생전에 남다른 일을 하여 명예를 남겨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이름을 남기신 도산 안창호 선생은 위대한 삶을 살다 가셨고 그 분의 삶 하나하나는 모두 의미 있는 발자취였다. 일생을 민족 독립운동에 바친 애국적 정치가이시며, 국민교화와 계몽에 헌신한 성실한 교육자이시고, 무실역행사상을 제시한 뛰어난 사상가이신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상과 교육관은 민족의 진로를 모색하는 데에 좋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1) 도산 안창호의 생애
(1) 청소년기
독립 운동가이며 교육자였던 도산 안창호는 1878년(고종 15년), 11월 평안남도 강서군 대동강 하류에 있는 도롱섬에서 태어났다.
1894년이었던 16세 때, 청일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외국세력이 마음대로 우리 땅에 들어와 설치는 것은 우리나라가 힘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여 힘을 기르기 위해 3대자본을 주장하셨다. 그것이 근검절약하여 경제적인 힘을 쌓을 금전의 자본,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배울 지식의 자본, 정직을 바탕으로 이룩할 신용의 자본이다. 이렇게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이때 평생을 민족의 독립을 위해 힘쓰기를 다짐하였다. 1895년에는 구세학당에 들어가 기독교에 입교를 하셨고, 1897년에는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만민공동회 주최연설로 대웅변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1899년인 21세에 고향 마을에 사립학교이자 최초의 남녀공학인 점진학교를 세워 시골 어린들에게 신식 학문을 가르치며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1900년에 보다 큰 뜻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가 교포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한인 친목회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2) 성인기
1905년, 을사조약으로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기게 되자 안창호는 1906년, 귀국하여 이갑, 양기탁, 신채호 등과 애국지사들의 비밀 결사 단체인 신민회를 조직하여 민족 각성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안창호는 신민회 사업을 더욱 힘차게 밀고 나가게 하기 위해서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우고 청년학우회를 조직하고 평양․서울․대구 등에 태극서관 설립하는 등 민족의 기둥이 될 젊은이들을 교육하기 시작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