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소설기라 불리는 1950년으로부터 1960년까지의 약 10년간의 문학사에서 장용학은 단연 눈에 띄는 작가이다. 이 시기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의식의 불안과 사회적 혼란, 그리고 인간성의 상실로 인한 정신적 황폐화 현상들이 두드러졌고 문학 역시 이를 반영하여 전후의 상황과 부조리에서 온 허무주의와 불안을 근간으로 했다. 신경득, 『한국전후소설연구』, 일지사, 1983, p7.
특히 장용학은 서구의 전후사조인 실존주의에 영향을 받아 자유와 인간의 존재를 탐구하는 작품들을 발표해 대표적인 실존주의 작가로 평가되는가 하면 당시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던 독특한 구성과 기괴한 작중인물, 관념적인 서술로 인해 소설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특이한 작가이다. 본고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요한시집」과 「역성서설」의 분석을 통해 장용학 소설에 나타나는 전후소설의 특징과 그의 문학사적 의의 및 한계를 탐구하려 한다.
2. 작 가 연 구
2.1 생애
그는 1921년 4월 25일 함경북도 부령군 부령면 부령동 375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장지원으로 1884년생이고 모친은 박숙자로 1887년생이며 본관은 울진이다. 형 장용봉은 사업을 했으나 요절했고, 누나가 이북에 남아 있으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1940년 3월 함경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1942년 와세다대학 상과에 입학했고 1944년 1월 20일 학병으로 일군(日軍)에 입대했다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그는 잠시 청진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1947년 9월에 월남했다. 그가 문단에 나온 것은 1949년 12월 하순경 단편소설 「희화(戱畵)」가 연합신문에 게재되고 1950년에 단편소설 「지동설(地動說)」이 [문예] 5월호에 실리면서다. 그러나 처녀작은 1948년 9월에 탈고한 『육수(肉囚)』였다.
1949년 말 한양공업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게 된 그는 1951년 1월에 부산으로 피난했고, 1951년 11월부터 1955년 10월까지 무학여자고등학교에서 근무했다. 「사화산(死火山)」, 「미련소묘(未練素描)」, 「찢어진 윤리학의 근본문제」, 「인간의 종언」 등과 특히 문제작이 된 「요한시집 탈고는 1953년 8월경, 발표는 『현대문학』 1955년 7월호이다.
」 등은 이 무렵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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