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림사지(定林寺址)--백제시대 대표적인 석탑이 있는 곳-
- 최초 등록일
- 2006.12.06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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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패망한 나라의 역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무너진 백제의 찬란히 빛났던 유적을 찾아보기가 쉽
목차
1. 유 래
2. 구 조
3. 유 물
본문내용
1. 유 래
패망한 나라의 역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무너진 백제의 찬란히 빛났던 유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그나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 밖에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백제시대의 부여를 대표하는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부여 정림사지는 부여 시내에 있는 폐사지로서, 백제사적을 대표할 수 있는 유적이다. 백제시대에도 정림사란 명칭이 사용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관련된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다.‘정림사지’라고 불리는 것은 출토된 기와 조각에 ‘태평 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太平八年戊辰定林寺大藏當草)’란 문귀에서 ‘정림사’가 절 이름으로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2. 구 조
정림사지의 전체적인 배치는 백제시대 다른 절처럼 남북 선상에 중문과 탑, 강당이 차례대로 놓여 있는 일탑일금당식(一塔一金堂式 ) 가람 배치를 하고 있다. 그리고 회랑이 강당에서 중문을 연결하여 둘러싸고 있다. 또한 중문 앞에 양쪽으로 연못을 파서 연못 사이의 다리를 지나 절로 들어오게끔 하였다. 정림사지는 두 개의 연못, 남문지(南門址), 중문지(中門址), 석탑, 금당지(金堂址), 강당지, 회랑지를 가지고 있는 백제 사찰 형식의 기본 모형을 갖추고 있다.
3.유 물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탑의 양식으로 추측해 보건데 익산 미륵사지석탑보다는 후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한국 석탑은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구조를 그대로 계승 발전하였으며, 한국탑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단히 우아하고 세련된 멋을 갖추고 있어 7세기 백제시대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참고 자료
김남용, 국보와 보물이 있는 옛 절터이야기, 일진사, 2005.
박경식, 우리 나라의 석탑, 역민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