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먼저 과거의 가야사는 지금까지 한국사에서 거의 잊혀진 역사였다. 이는 문헌 사료상에 가야에 대한 기록이 부족하여 고려시대에조차 이를 제외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편찬되고, 가야의 전ㆍ후기 맹주국이 자리 잡았던 김해나 고령에 가 보아도 백제나 신라의 수도였던 부여나 경주에 비해 이렇다 할 문화 유적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야라는 국가는 고구려ㆍ백제ㆍ신라와 달리 연맹왕국단계에서 멸망을 하였다. 하지만 현재에 와서는 가야지역에서 각 소국 왕들의 무덤이 지방별로 분산되어 광범위하게 남아 있으며, 그 안에서 나오는 부장품들이 같은 시대의 백제나 신라에 못지않게 풍부하고 수준이 높다. 이런 이유로 현재에는 가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연구 또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여러 연맹 체제를 유지하며 여러 국가들이 결속관계를 맺었던 가야는 많은 수의 나라만큼 각 지역의 문화 또한 구분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많은 연맹국가 중 전기와 후기의 맹주국인 금관가야와 대가야의 고분을 중심으로 가야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가야는 어떤 나라인가?
가야는 중국 사서인 『삼국지(三國志)』권30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의해 언급이 되어 있다. 이 책에 의하면 한반도 중ㆍ남부지역에는 늦어도 1세기에서 3세기 후반까지 마한(馬韓)ㆍ진한(辰韓)ㆍ변한(弁韓)이라고 하는 삼한이 존재하고 있었다. 마한은 50여국으로, 진한과 변한은 각각 12국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 마한은 그 구성원의 하나인 백제국(伯濟國)에 의해 통합되어 백제(百濟)가 되었고, 진한도 그 구성원의 하나인 사로국(斯盧國)에 의해 통합되어 신라(新羅)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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