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당 최남선의 사상적 변화
- 최초 등록일
- 2006.10.06
- 최종 저작일
- 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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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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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序言
Ⅱ. 『최남선의 근대인식과 조선학 연구』- 최남선은 조선적인 것을 찾으려 했다.
1. 무엇을 주목할 것인가?
2. 저자소개
Ⅲ.『최남선의 근대인식과 조선학 연구』의 내용 비평
1. 최남선은 조선학을 통해 `조선적인 것`으로 독립을 꾀했다.
2. 전통 창출과 `조선 문화론`의 반민족성
3. 왜곡된 근대주의, 오도된 계몽주의
4. `신문화의 선구자`인가 `반민족 친일파인가`
5. 저자의 우유부단한 태도, 주장의 모호성.
Ⅳ. 結語
본문내용
나는 어릴 적에 신해철이 리더로 있는 그룹 `N.EX.T`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테이프로밖에 들을 수 없었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 이 노래로 얼마간 밤을 지새우며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노래는 그룹 `N.EX.T`가 최남선의 신체시로부터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는 것을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교과서에 실린 이 시를 볼 수 있었다. 당시에 이 시를 접했을 때, 그룹 `N.EX.T`의 노래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나의 미래에 대해 꿈을 부풀릴 수 있는,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br />
최남선은 한말부터 해방 후까지 활동을 해온 인물이다. 그 사이에 그는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는 자기모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금도 그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분명한건, 그의 인생이 그만큼 뚜렷이 갈라진다는 것이다. <br />
그는 중인계급의 신분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유학으로 서구의 근대문화를 접하기에 유리했다. 특히 그는 근대 문명의 수용 및 전파를 위한 도구로서 저술과 출판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최남선의 근대 인식과 조선학에 대한 연구는 서구나 일본을 통해 수용된 조선의 근대 모습은 어땠는지, 또 이러한 근대가 한말, 일제시대, 해방 후라는 각 시기별 민족주의 논리를 형성하는가에 대한 문화적인 측면을 잘 나타내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br />
그가 저술과 출판을 통한 근대 문화를 전파하려 했던 노력은 1907년 18세의 나이로 출판기관인 신문관(新文館)을 창설하고 민중을 계몽, 교도하는 내용의 책을 출판하기 시작하였고, 1908년 근대화의 역군인 소년을 개화, 계몽하여 민족사에 새 국면을 타개하려는 의도로 종합잡지 『소년 少年』을 창간하고, 창간호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실어 한국 근대시사에서 최초로 신체시를 선보였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br />
참고 자료
- 박태순, 2002,『역사를 위한 변명과 해명-최남선의 반민족사학』, 새미
- 류시현, 2005,『최남선의 근대인식과 조선학 연구』, 고려대학교.
- 류시현, 2005,『최남선, 친일로의 자기부정 해방 후 변명으로 이중 부정』, 내일을 여는 역사 제 20호
- 이지원, 2002, 『최남선, `민족`의 이름으로 황민화를 강조한 문화주의자』
- 한국학술진흥재단 - `류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