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행정]한국의 인사행정제도의 특징과 변천
- 최초 등록일
- 2006.09.26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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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인사행정제도를 1공화국부터 문민정부까지 인사행정에 있어서 변천과 그 주요한 특징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우리 현대정부들의 인사행정을 그 흐름별로 알아볼수 있어 인사행정에 관한 레포트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 레포트의 내용은 다량의 책을 참고하여 쓴 것이라 내용의 정확성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본다.
목차
1. 제 1공화국
2. 제 2공화국
3. 제 3공화국
4. 제 4공화국
5. 제 5공화국
6. 제 6공화국
7. 문민정부
본문내용
1. 제 1공화국
정부 수립이후 ‘정부조직법’(1948년 7월)과 ‘국가공무원법’(1947년 8월)이 제정됨에 따라 인사기관 및 인사관계법령 등이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정부조직법은 중앙인사기관을 이원화하여 규정하고 있었다. 즉, 고시와 전형을 담당하는 합의제의 고시위원회와 기타의 인사행정을 담당하는 국무총리 직속하의 총무처 인사국이다. 공무원의 채용시험으로 고등고시와 보통고시가 있었으나, 합격자의 수는 극히 적었다. 둘 다 자격시험이었으며, 주관식으로 내용은 법학 위주로 되어 있었다.
1950년대에는 인사행정에 있어서 엽관주의가 심하게 나타났던 시기였다. 이승만 대통령에 의한 자유당의 창당으로 시작된 장기 집권체제의 유지, 강화현상은 인사행정의 엽관주의와 공무원의 여당화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엽관주의적 인사는 그 목적이 국민의 지지를 상실한 자유당의 장기집권에 있었고, 그 방법은 공무원을 일시에 대폭적으로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생긴 공석을 충원 또는 전보, 승진과 같은 인사조치를 통하여 정실인사를 실시하였다.
제 2차 헌법개정(1954년 11월 29일)으로 ‘정부조직법’이 개정되면서 중앙인사기관은 국무원 사무국의 고시과와 인사과로 축소되었다. 1960년 7월에는 다시 국무원 사무국이 국무위원을 장으로 하는 국무원 사무처로 승격되면서 인사행정의 새로운 발전이 시도되기도 했었다. 당시의 임용을 살펴보면 근대적 인사행정이 실시되기 전인 이때에는 모집이나 시험, 임명이 전통성을 탈퇴하지 못하였다. 여기의 전통성이란 일제식민체제의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집은 공개자격시험이 이루어지는 3급이나 4급류의 고등고시, 보통고시의 경우를 제외하고 공개모집이 원칙적으로 없었다. 따라서 다분히 비밀모집이었고 전기한 두 경우에도 극히 소극성을 갖고 있었다.
지역 대표성에 있어서도 공개경쟁 시험에 의하는 것이 극히 적기 때문에 특정지역출신이 차별을 받고 있어 민주성, 능률성이 거의 고려되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교육의 측면에서 보면 임용시험은 자격시험, 업적시험으로 이루어졌고 적성검사는 물론 훈련은 있었으나 현 직원의 계속적인 능력발전보다는 임용전의 예비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기타의 근무성적평정, 승급, 승진, 전 보직의 문제는 전혀 이러한 각도에서 다루어지지를 않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