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에 치우쳐진 사관과 일제시대 사가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잘못된 역사관으로 인해 철저히 소외된 인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고구려인 이정기(李正己, 732~781)라는 인물이다. 이정기는 안록산(安祿山, 703?~757)·사사명(史思明, ?~761)의 난을 통해 고구려인으로써 당의 평로치청(平盧淄靑) 절도사가 된 후 무려 4대에 걸쳐 산동지역을 지배했다. 게다가 이정기 는 자기 영토 내의 백성들로부터 징수하는 세금을 당에 바치지 않았다는 사실과 당(唐)과의 패권을 다투었던 사실을 볼 때 완전한 독립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정기 일가는 안사의 난 이후 할거한 세력 가운데 영역이 가장 컸을 뿐만 아니라 군사력 또한 제일이었다. 『구당서』, 「이정기전」; 이덕일,『장군과 제왕2-중원의 고구려, 제왕 이정기』웅진 지식하우스 2005년 11월, p.182. “(이정기는) 처음 치주(淄州)·청주(靑州)·제주(濟州)·해주(海州)·등주(登州)·래주(萊州)·기주(沂州)·밀주(密州)·덕주(德州)·체주(棣州) 등 여러 주를 차지했다. ……대력 연간에 설숭이 죽고 이영요가 난을 일으키자 여러 절도사들이 함께 그 지역을 공격했는데, 점령하는 대로 자신의 영토로 만들었다. 이정기는 이때 다시 조주·복주·서주(徐州·)·연주(兗州)·운주(鄆州) 등 모두 15개 주를 얻었는데, 같은 절도사들도 이정기를 겁내게 되었다.……일찍이 전승사를 공격한 적이 있어서 인근의 적들이 모두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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