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통일신라의 전남지방 편제-장보고와 청해진체제
- 최초 등록일
- 2006.09.20
- 최종 저작일
- 2006.08
- 1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호남지방과 전라도 지역의 편제와 장보고에 대한 것입니다..
추가로 장보고의 소개와 더불어 청해진시절의 편제도 같이 넣어보았습니다.
청해진에 대한 조사도 있습니다
목차
1. 행정편제
1) 당의 백제고지 편제계획
2) 신라의 전남지방 편제
3) 전남지방 호족세력의 일례
2. 청해진과 장보고
1) 장보고의 고향과 신분
2) 당나라에 건너간 시기와 동기
3) 당에서의 활동
4) 귀국과 청해진 체제의 건설
5) 장보고 무역선단의 항로
6) 청해진의 폐지 원인
3. 장보고 연구의 실태 실태
1) 장보고에 대한 당대의 자료
2) 장보고에 대한 평가
3) 장보고 연구의 주요 잇슈들
4) 역사적 평가 및 의의
본문내용
1. 행정편제
1) 당의 백제고지 편제계획 - 7주 52현
- 전남지방 : 사반주(장성 혹은 영광), 대방주(나주 혹은 회진), 분차주(광주 혹은 낙안)
2) 신라의 전남지방 편제
- 주군 편제
. 원래는 發羅州
. 신문왕 6년(686)에 발라주를 군으로, 武珍郡을 州로.
. 경덕왕 16년(752)에 武珍州를 武州로 개칭.
. 15군 42현을 관할
- 주군 개편 : 3개 현을 군으로 승격
- 군사조직
. 10停 중의 하나인 未多夫里停 : 나주 봉황면 철야면 일대로 추정됨.
- 청해진 설치 : 흥덕왕 3년(828) - 851년 철폐(문성왕 13년)
3) 전남지방 호족세력의 일례 - 安吉
- 문무왕 庶弟 車得公 거사차림으로 국내 시찰(거사차림) 때의 일 - 貸妻의 유습(?)
- 상수리제도의 실례
4) 귀국과 청해진 체제의 건설
9년간 중국 대륙을 근거로 해상무역을 전개하여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자, 장보고는 고국을 국제 해상무역의 중심 기지로 삼고자 하는 새로운 계획을 세웠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828년의 그의 귀국은 이의 실현을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장보고가 국제 해상무역의 중심 기지로 염두에 두었던 지역은 완도였다. 완도가 고국의 땅이자 그가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에 애착이 가기도 하였겠지만, 냉철한 사업가인 그가 단순히 고향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완도를 택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고, 지리적 조건과 인적 물적 자원의 조건 등 다른 조건들도 폭넓게 검토되어 완도가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한반도는 중국대륙과 일본열도를 해양으로 연결하는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고, 또 그 중에서도 서남해지방은 중국 동해안과 최단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해양 성향의 인적 자원을 풍부하게 갖고 있어, 객관적으로 볼 때 서남해지방이 동아시아의 해상무역의 중심지로서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