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경준
- 최초 등록일
- 2006.09.19
- 최종 저작일
- 2006.01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신경준의 생애
목차
1. 신경준(申景濬)의 생애
2. 신경준의 역사지리 인식
3. 신경준의 역사학
4. 사학사적 의의
본문내용
1. 신경준(申景濬)의 생애
신경준은 조선 영조 때 학자로 1712년 전라도 순창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자는 순민(舜民), 호는 여암(旅菴)이다. 고령 신씨가 순창에 거주한 것은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자 신숙주의 동생인 신말주(申末舟)가 관직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한 15세기 부터였다. 신경준은 한 때 소사, 직산 등에 옮겨 살았으나 1744년에 다시 순창의 옛집으로 돌아와 34세부터 43세까지 고향에 묻혀 살며 저술에 힘썼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운해훈민정음 韻解訓民正音》(세칭 훈민정음운해)을 꼽을 수 있다.
그가 관직에 나아간 것은 43세 때인 1754년(영조 30)에 실시된 증광향시에 급제하면서 부터인데 당시의 시험관이 홍양호(洪良浩)로 상경후 깊은 친교를 맺었다. 늦은 나이로 관계에 진출한 그는 성균관 전적, 사간원 정언, 사헌부 장령, 서산 군수, 장연 현감, 사간원 헌납 등을 거쳤으나 관직생활은 그리 순탄한 편은 아니어서 15년만인 1769년(영조 45)에 고향인 순창으로 낙향하였다. 그러나 이 해에 영의정 홍봉한이 임금에게 강력하게 천거하여 비국랑으로 다시 관직에 나아가게 되었다. 영조는 신경준이 편찬한 『강역지(疆域誌)』를 보고 그로 하여금 『여지편람(輿地便覽)』을 감수하여 편찬하게 하였다. 『여지편람』을 본 영조는 그 범례가 중국의 『문헌통고(文獻通考)』와 비슷하다 하여 『동국문헌비고(東國問獻備考)』로 이름을 바꾸어 새로 편찬하게 하였다.
1770년(영조 46)에 편집청을 따로 설치하여 문학지사(文學之士) 8인을 선발하여 『동국문헌비고』를 편찬하도록 함에 따라, 신경준은 『여지고(輿地考)』부분을 관장하였다. 역대국계(歷代國界), 군현연혁(郡縣沿革), 산천(山川), 도리(道里), 관방(關防), 성곽(城郭), 해방(海防), 해로(海路) 부록으로 북간도강계(北間島疆界), 서간도강계(西間島疆界)로 구성된 목차에서 볼 수 있듯이 『동국문헌비고』의 「여지고」는 그의 해박한 지리 지식을 종합하여 편찬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지리에 관한 저술은 대부분 이 「여지고」에 부분적으로, 혹은 변형된 형태로 실려 있다.
이후 승지 · 북청부사 · 순천부사 · 제주목사 등을 역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여생을 보낸 다음 1781년(정조 5) 70세로 일생을 마쳤다.
그의 업적은 여러 문헌들에 다음과 같은 논제(論題)나 책이름으로 나타나 있다. 《운해훈민정음》·《일본증운 日本證韻》·《언서음해 諺書音解》·《평측운호거 平仄韻互擧》·《거제책 車制策》·《병선책 兵船策》·《수차도설 水車圖說》·《논선거비어 論船車備禦》·《의표도 儀表圖》·《부앙도 #부80仰圖》·《소사문답 素沙問答》·《직서 稷書》·《장자변해 莊子辨解》·《강계지 疆界志》·《산수경 山水經》·《도로고 道路考》·《산수위 山水緯》·《사연고 四沿考》·《가람고 伽藍考》·《군현지제 郡縣之制》등이다.
이상에서 그가 문자학(文字學) · 성운학(聲韻學) · 지리학(地理學)등을 중심으로 다방면에 걸쳐서 업적을 남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운해훈민정음》은 송학(宋學)의 시조의 한 사람이라는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성음도 皇極經世聲音圖》(正聲正音圖라고도 함.)를 본보기로 하여 일종의 운도(韻圖)를 만들려고 전개한 이론이기는 하였으나,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깊이 문자론(文字論)을 전개한 학술적인 업적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