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작가론)프로문학의 선구자 조명희의 소설 낙동강분석
- 최초 등록일
- 2006.08.22
- 최종 저작일
- 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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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프로문학의 선구자 조명희의 소설 낙동강에 대한 분석레포트입니다.
목차
Ⅰ. 작가 趙明熙 에 대하여
2. 줄거리
3. 인물의 성격
4. 구성 단계
5. 이해와 감상
6. 핵심사항 정리
본문내용
포석 조명희는 1894년 충북 진천군에서 부친 조병행과 모친 정씨 사이의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네 살 때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어머니와 맏형 조공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1907년 네 살 연상의 여흥 민씨와 결혼하고, 중앙고등보통학교에 다니며 애국적 영웅 전기와 번안된 유럽의 영웅소설들을 탐독하면서 영웅숭배열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1914년 중앙고보를 중퇴, 북경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가출하나 실패로 끝나고, 신소설을 비롯한 국내외 소설을 남독하며 소일하는데 이 무렵 <레미제라블>을 읽고 문학에의 뜻을 품는다. 1919년, 고향에서 3․1 운동에 참여하여 투옥되기도 하며, 일본 동경 동양대학 인도철학부 윤리학과에 입학하여 궁핍한 유학생활을 하는데, 이 때 유학생 모임인 학우회에 적극 참여, <김영일의 사>를 창작하여 무대에 올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한다. 이후 귀국하여 산문 문학으로 관심 영역을 바꾸면서 <파사>를 발표한다. 1925년 <땅속으로>를 발표하며 작가로 선을 보이는데, 시대일보사에 입사하여 김우진과 함께 학예부 기자로 근무하며 사상의 기초를 정립, 강화하여 같은 해 8월 결성된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창립 회원으로 참여한다. 이후 단편소설 창작에 몰두하는데, 1927년 <낙동강>을 발표하면서 프로문학이 제2기적 작품으로 넘어가는 데 디딤돌 역할을 한 작가로서 높이 평가받는다. 그러나 여전히 궁핍한 삶을 살던 그는 1928년 러시아로 망명하여 농민청년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3년 동안 거주한다. 1931년 황명희를 만나 재혼하고 비교적 안정된 가정생활과 함께 교직생활을 하면서 창작에도 열정을 쏟아 연해주 한인 신문인 <선봉>과 잡지 <노력자의 죽음>에 시, 평론, 수필을 발표하며 초창기 러시아 한인문학의 기반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한다. 1937년 소련 헌병에 의해 체포되고 일본을 위한 간첩 행위를 하는 자들에게 협력했다는 혐의로 총살당한다. 1956년 후르시초프의 해빙 정책으로 복권되어 조명희 문학에 대한 연구와 기념사업이 활발하게 펼쳐지는데 1959년 <조명희 선집>이 간행되고, 1990년 타슈켄트에 조명희 박물관이 세워진다.
조명희의 문학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살필 수 있는데, <봄 잔디밭 우에>에 실린 40여 편의 시를 비롯하여 <김영일의 사>, <파사> 등의 희곡에는 대체로 낭만적이고 허무적인, 또는 인도주의적 세계관이 작 드러나 있다. 또한 <땅속으로>, <저기압>, <농촌사람들>과 같은 초기 단편소설은 궁핍한 삶의 문제나 지식인의 시대고를 통해 추상적인 세계관을 내보이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