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답사]융건릉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6.06.22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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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융건릉을 다녀와서 쓴 감상문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융릉과 건릉
1. 융건릉 가는 길
2. 융릉과 사도세자의 비극
3. 건릉
Ⅲ. 조선시대의 권력
본문내용
Ⅰ. 서론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산1-1번지에 위치한 융건릉은 사적 제206호로 지정된 문화유적지로서, 능역의 면적이 70만 5,653㎡에 이른다. 융건릉은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둘째 아들이며 사도세자로 잘 알려져 있는 정조의 아버지 장헌세자(추존황제 장조)와 혜경궁 홍씨(추존 현경의황후)가 잠들어 있는 융릉과 정조와 효의선황후가 잠들어 있는 건릉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문화재청 화성지구관리소 홈페이지 (http://hsro.ocp.go.kr/sosok/zigu/10hwaseong/home/index.html)
성리학을 국학으로 삼아 인, 의, 예, 지를 무엇보다도 중시했던 조선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사도세자 사건은 꺼져가던 조선을 잠시나마 중흥시켰던 영․정조 시기와 맞물리면서 현재까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친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굶어 죽인 비극적인 사건은 당사자가 임금과 세자라는 관계였기 때문에 ‘권력’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사도세자 사건과 관련하여 영․정조 시기의 조선의 권력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융릉과 건릉
1. 융건릉 가는 길
서울에 살며 자동차 면허를 갖고 있지 않은 내가 택한 길은 지하철을 타고 수원역까지 간 후 수원역 앞에서 24번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돌아올때는 46번 버스를 탔다. 내가 융건릉을 찾은 때는 일요일이어서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돗자리에 도시락을 들고 가족단위 혹은 꽤 큰 모임 단위로 한가롭게 소풍을 나온 모습들이었다. 왕의 무덤을 찾는 일이어서 일부러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는 내가 이상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이렇듯 소풍객들이 많았던 이유는 융건릉을 둘러싸고 있는 빽빽한 나무들 때문일 것이다. 삼림욕장을 연상시키듯 나무들이 가득해서 햇볕이 따갑지도 않았고 산책로도 아주 잘 마련되어 있었다.
참고 자료
문화재청 화성지구관리소 홈페이지 (http://hsro.ocp.go.kr/sosok/zigu/10hwaseong/home/index.html)
이덕일, 사도세자의 고백 - 그 여드레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푸른역사, 1998
영조실록 36년 7월 21일
이호일, 조선의 왕릉, 가람기획, 2003
엠파스 한국학 지식사전 조선의 왕 (http://www.koreandb.net/koreanking/html/person/pki60022.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