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나라 유학
신라 말엽 868년, 열두 살 어린 소년이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고 있었다. 곁에서는 그의 아버지가 전송하고 있었다. 아버지 최견일은 신라 유교를 대표할 만한 많은 학자를 배출한 최씨 가문 출신이었다. 그리고 어린 아들은 장차 문장으로 당대와 후세에 이름을 떨칠 최치원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보내면서 당부하였다. 최치원은 훗날 헌강왕에게 <계원필경집>을 지어 오리면서 그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열두 살에 집을 떠나 중국으로 향하는 배를 타려 할 때,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는 “네가 심 년 공부하여 진사에 급제하지 못한다면 나의 아들이라고 하지 말아라. 나도 아들 두었다고 하지 않겠다. 그 곳에 가서 부지런히 공부에 힘을 다하여라.” 당부하셨습니다. 신은 엄격하신 훈계를 마음에 새겨 조금도 잊지 않고 쉴새없이 머리를 묶고 다리를 찌르는 노력을 하여 아버님의 뜻을 받들고자 하였고, 그리하여 진실로 남보다 열배 백배의 힘을 기울여 노력한지 6년만에 급제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그 모습이 한눈에 그려질 정도로 비장하다. 아버지는 기필코 성취해야 할 그 무엇을 아들에게 당부하고 있고, 아들은 그 뜻에 부응하기 위하여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다 한다. 성취하지 못하면 아들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협박에 가까운 당부가 너무도 절실하다. 열두 살이면 만리 타국 유학을 가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마음을 다잡는다. 그가 아들을 통하여 실현해 보고자 하는 소망은 아주 간절한 것이었다. 그러한 소망을 갖도록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타고나나 혈통에 따라 지위가 결정되는 엄격한 골품제의 통일 신라였다. 그리고 최치원의 가문은 진골 귀족에 비해 차별받는 육두품 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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