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건륭제
- 최초 등록일
- 2006.05.26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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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나라 제 6대 황제 건륭제.
목차
인물소개
치세와업적
-영토확장
-예술과 문학
-서방과 교류
-화신의 전횡
건륭제와 그의 여인들
-효현순황후 부찰씨
-황후 오라나랍씨
-효의순황후 위가씨
-향비
본문내용
1) 인물소개
이름 홍력(弘曆). 시호 순황제(純皇帝). 묘호 고종(高宗). 옹정제(雍正帝)의 다섯째 아들로, 모후는 유호록(祜祿)이고 황후는 부찰(富察)이며 아들 17명, 딸 10명을 두었다. 1735년 10월 7일 옹정제(雍正帝:1723~35 재위)가 죽기 직전, 건륭제는 후계자로 선포되었다. 옹정제는 제위에 오르면서 홍력을 은밀하게 후계자로 내정해두었다. 이것은 선제(先帝)인 강희제(康熙帝:1661~1722 재위)의 뜻을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홍력이 실제 황태자로 지명되었을 때, 위의 네 왕자들은 모두 죽고 없던 상태였다. 강희제는 손자인 홍력의 뛰어난 자질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래의 황제로 점찍어두고 만반의 준비를 시켰다. 홍력은 철저하게 계획된 교육을 받은 뒤,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다. 1733년에는 왕자들 가운데 으뜸인 화석보친왕(和碩寶親王)에 책봉되었다. 1735년 10월 18일, 24세(중국식으로는 25세)의 나이로 제위에 오르게 되었고, 건륭이라는 연호를 쓰면서 60년이 넘게 통치했다. 조부 강희제(康熙帝)의 재위기간(61년)을 넘는 것을 꺼려 재위 60년에 퇴위하고 태상황제가 되었는데, 이 태상황제의 3년을 합하면 중국 역대황제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길다.
건륭제는 큰 키에 준수한 몸매로 단정한 자세를 늙을 때까지 잃지 않았으며 강건한 체력과 활동적인 성품으로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았다. 베이징에 있든 러허(熱河:지금의 청더[承德], 중국 동북부 지역으로 청의 근거지)에 있든, 또는 베이징 근처의 원명원(圓明園)에 있든, 정해진 의식절차에 따라 규칙적인 하루 일과를 보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목욕을 하고, 혼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한 뒤, 대신들이 가지고 온 보고서와 비망록을 결재하고, 관계 신하들을 접견하여 지시사항을 내렸다. 오후 2시에는 황실 주방에서 만든 몇 가지 음식을 골라 약 15분에 걸쳐 혼자서 점심을 먹었다. 한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한 뒤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서예를 하거나, 시를 쓰거나, 학자들과 토론을 하면서 오후를 보냈다. 가끔 황후나 가족들을 만나기도 했다. 다과류의 간단한 음식을 먹을 뿐 저녁은 먹지 않았고, 술도 전혀 마시지 않았다.
건륭제는 검소하고 조직적인 사람이었지만, 흥취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인품은 온화했고, 궁중에서 연회를 베푸는 것도 좋아했다. 설날에는 황궁 주변 길을 행상들에게 개방했고, 또 축제 분위기에 젖어 황궁 주변을 거닐기도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