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첩
- 최초 등록일
- 2006.04.17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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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452년 이탈리아 반도 중부 토스카니 지방 피렌체(르네상스의 발상지) 자유도시 외각에 있는 서남부 마을 빈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세르 다 빈치는 공증인이었고, 어미니는 농사꾼의 딸인 카테리나였다. 레오나르도는 세르의 서자였다.
목차
제1피렌체 시대(1466-1481)
제1밀라노 시대(1482-1499)
제2피렌체 시대(1500-1506)
제2밀라노 시대(1507-1512)
로마, 앙부아즈 시대(1513-1519)
본문내용
제1피렌체 시대(1466-1481)
1466년 (14세) 레오나르도는 피렌체에서 화가 겸 조각가로 활동을 하고 있던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에게로 가서 도제(徒弟)로 입문을 하였다. 1472년 (20세) 도제기간을 마친 레오나르도는 피렌체 화가조합에 가입하자마자, 스승인 베로키오의 작품 <그리스도의 세례식> 가운데 왼쪽 끝부분에 천사와 풍경을 그려 넣는 일을 맡게 된다. 그리고 1478년경, <성 지롤라모>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수태고지도>를 제작한다. 1481년에는 산 도나토 아 스코페토 수도원으로부터 제단을 장식할 <삼왕예배>(우피치미술관)를 위촉받았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제1밀라노 시대(1482-1499)
1481년에서 1483년까지 약 3년여 시간 동안 레오나르도는 페렌체의 생활을 정리하고 밀라노로 향한다. 그곳에서 폭군 가레아초 마리아 스포르차가 암살을 당하고 그 아들인 장 가레아초의 연약한 틈을 타, 숙부 루도비코 스포르차(일명 일 모로, 이태리어로 검둥이란 뜻)가 정권을 장악한 상태였다. 일 모로는 자신을 문화애호가로 자처하면서, 여러 학자와 예술가들을 궁정으로 불러 모았다. 레오나르도 또한 이 밀라노 공의 부름으로, 어떤 때는 음악가(리라 연주가)로, 어떤 때는 도시계획자와 여흥을 돋우는 사람으로 또 어떤 경우에는 군사기사 자격으로 수리공사를 감독자로 대단한 활약을 했다.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살펴보면, 밀라노 성당의 디브리오 모형을 만들고 밀라노 성곽 장식에 참석하기도 했으며, 무려 16년 이라는 긴 시간을 할애한 밀라노 공의 선조 프란체스코 스포르차 기마상(프랑스 군 침입 당시 파괴되었다) 원형을 제작했다. 그뿐 아니라 밀라노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의 <암굴의 성모>(미완성) 제작에 착수했으며, 산타 마리아 델레그라치에 성당 식당의 벽화로 <최후의 만찬>(1495-1498년, 43세-46세, 미완성)과 밀라노 공 부부와 그의 아들을 그렸으며, 밀라노 공의 연인들인 체치리아 칼프레니아 르쿠레티아 크리벨리의 초상화도 제작했다. 당시 레오나르도가 맡은 일들은 대부분 최소한 몇 년씩 걸렸고, 게다가 이복형제들과의 사이에 소송사건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밀라노 시대에 들어 레오나르도는 인체해부 연구와 빛과 그림자에 관한 연구로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알프스 지방을 여행하면서 몬테로자를 등정하기도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