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 341호로 지정된 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1990년부터 1993년까지 경성대학교 박물관에서 3차에 걸친 발굴이 실시되었다. 이곳은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와 김해공설운동장 사이의 동서로 뻗은 구릉지대에 있는 가야의 무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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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대성동 고분군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목곽묘(木槨墓)이며 다음으로는 목관묘(木棺墓)이다. 즉, 김해 구사국(狗邪國)의 가장 대표적인 무덤은 목관묘(木棺墓)와 목곽묘(木槨墓)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금관가야 지배자들의 부장품과 금관가야의 문화상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 북방계(北方系) 유물인 동복(銅鍑) 아가리의 양쪽에 고리가 달린 청동 솥은 북방초원지대의 유목민이 고기를 삶는데 사용한 취사도구의 일종이다. 대성동 29호와 47호, 양동 235호에서 출토된 바 있고 경주출토품으로 전하는 숭실대소장품이 있다. 이러한 동복은 유사한 형태가 부여와 고구려의 고지(故地)인 중국 길림성의 유수노하심(楡樹老河深), 모아산(帽兒山), 학고동산(學古東山)유적과 집안(集安)의 적석총에서 출토된 바 있어 양 지역의 관련성이 주목된다.
과 청동제호형대구(靑銅製虎形帶鉤)가 출토되고, 일본계(日本系)유물인 통형동기(筒形銅器), 파형동기(巴形銅器) 바람개비 모양의 청동장식품을 말한다. 이러한 유물은 일본에서 이제까지 69점이 출토되었고, 한국에서는 대성동고분에서만 9점이 출토되었다. 대성동고분군 13호에서는 방패꾸미개로 출토되었지만 때로는 화살통에 장식되기도 하고 단독으로 출토 되기도하여 이 유물이 반드시 방패꾸미개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본에서나 대성동고분에서는 방패의 장식물로 부착된 경우가 많다. 주로 최고 지배계층의 대형무덤에서 출토되므로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물로 사용되었다고 판단되며 문양은 태양을 상징한다. 대성동 13호무덤에서는 왜계의 돌화살촉과 함께 출토되어, 일본에서 제작되어 김해지역에 이입된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으며 당시 가야와 왜의 교역상을 알려주는 자료로서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등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한·중·일과의 문물교류 상황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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